20년 만에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해군 장교로 복무한다는 소식을 끝으로 어디에서도 친구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시골집에서 예산 읍내에 나갈 때면 늘 친구의 집앞을 지나쳤다. 그때마다 친구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당연히 친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선뜻 친구의 시골집에 들려볼 생각을 못했다.

 

며칠 전 친구의 집앞을 지나다 우연히 친구가 서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요즘 뜨고 있는 소유진의 남자 '슈가 보이' 백종원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예산고등학교다. 

 

친구를 발견하자 마자 서둘러 차를 돌려 친구의 집앞에 주차했다. 친구의 이름을 부르자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는 모습이 20년전 그대로 였다. 

 

"집에 다니러 온거야"하며 인사를 건넨 내게 친구는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 시골에 내려와 줄곧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것이다. 사실 친구는 서울의 명문대 법학과를 졸업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공부를 꽤 잘했던 친구다.

 

그 때문에 친구가 사법 시험에 합격을 했거나 적어도 법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던 친구가 결혼도 안하고 조용하고 한적한 고향 마을에 머물러 살거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었다.

 

친구가 시골에 살게된 계기는 세파에 시달려서도 아니고 사법 시험에 떨어졌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욕심을 버리고 운명에 순응하며 부모님 곁을 지키다 보니 어느새 세월이 10년이 흘렀다고 한다.

 

조심스럽지만 사법시험에 대해서도 물었다. 친구는 "4학년 때 한번 시험을 봤지만 떨어졌다"며 "내 머리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물론 친구는 겸손한 편이다. 몇년 더 공부했다면 지금 쯤 다른 길을 걸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에게 사법 시험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보였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농사일에 대해 물었다. "나중에 틈나면 농사 짓는 법 좀 가르쳐 달라"고 말하자 친구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곁에서 일을 거들며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 우문에 현답이다.

 

친구는 또 "아이가 있다면 모를까 아이가 없다면 소농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 소농으로는 부족하고 부업을 하거나 따로 일자리를 구해야 할 수도 있다며 팍팍한 농촌 살이의 일면을 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친구는 그 어느때 보다 행복해 보였다. 아주 오래전 친구가 다니던 대학에 종종 놀러가곤 했었다. 그때마다 친구는 늘 찌든 모습으로 도서관에서 법전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런 친구의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친구는 "주변에 또래가 없어서 심심할 때도 있지만 교회에 나가 봉사 활동도 하고 농사일도 하면서 금새 심심함을 잊는다"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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