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유모차에 소화기를 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28일 밤 9시 지하철에 몸을 실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추적 추적 비가 내리는 시청앞 광장을 한바퀴 돌아 국가인권위 쪽으로 해서 청계광장까지 무작정 걸었다. 오고 가며 마주친 사람들의 표정은 이전 처럼 밝고 명랑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공권력은 오늘도 여전히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작렬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센스도 없다. 빗줄기를 무릅 쓰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에게 겨우 물대포나 쏘다니, 이 기묘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밤 10시 20분. 동아일보 부근 청계 광장 인근에선 젊은 청년과 50세 쯤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주제는 '폭력시위'였다. 젊은이는 중년 남성에게 시민들이 다소 폭력적으로 변한 것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며 이해를 시키고 있는 듯 보였다.

이때 우비차림의 중년 아줌마 두 분이 50대 남성을 향해 "아저씨도 물대포 한번 맞아 보세요", "댁에 가셔서 그냥 푹 쉬세요"하며 톡 쏘아 붙이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구경꾼이 되어 버린 나는 머쓱했다. 정곡을 찔린 기분이 들어서다.

다시 프레스센터 앞으로 발길을 돌렸다. 경찰의 최전방 저지선이 위치한 곳이다. 경찰은 이날도 청와대뿐 아니라 조선과 동아일보도 충실히 지켜 주고 있었다. 도로 양쪽을 닭장차로 막아선 풍경은 '명박산성' 다음가는 서울의 '명물'로 기록 될 듯 싶다.

10시 40분. 경찰의 닭장차 앞에서 경찰과 대치한 시민들은 여전히 "폭력경찰 물러가라", "이명박은 물러가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프레스센터 옆 작은 계단에선 한 아주머니와 7세쯤으로 보이는 사내 아이 하나가 초를 줄지어 놓고 차례로 불을 밝히고 있었다. 누가 감히 이들을 '친북 좌파 반미 세력'으로 단순 규정할 수 있을까. 가슴이 답답했다.

다시 시청앞 광장으로 돌아와 담배 한대를 피웠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인지 담배도 축축했고, 내 마음까지도 축축한 빗물에 젖어드는 듯 했다. 담배를 반쯤 피웠을까.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큰 박스 두개씩을 각각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어디까지 들고 가세요?" 아무 생각없이 튀어 나온 말이었다. "촛불 다방이요!" 반가운 이름이다. 촛불 집회자들의 밤샘 도우미. 그들이 타준 커피 맛은 이미 '촛불'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었다. 나는 말없이 박스 하나를 받아 들고, 그것을 '촛불 다방'까지 들어다 주었다. 한심하긴 하지만, 이것이 이날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다.

한참을 광화문 일대를 돌아 다니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12시가 훌쩍 넘어 버렸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 버렸지만, 오늘 역시도 <오마이뉴스>에 접속해 촛불시위 동영상을 보게 된다. 구경꾼의 삶이자, 비겁한 방관자의 삶인지도 모르겠다. 그속에 오롯이 녹아 들지 못한 어정쩡한 상태.

이 지루한 싸움의 끝은 무엇일까. 촛불을 든 그들은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

전경 시위 여성 또 집단구타 - 노컷뉴스
군화발에 짓밟힌 여성 살기위해 굴렀다- 한겨레

물대포를 제외하고는 집회가 비교적 평화로워 보여 집에 일찍 들어왔는데, 집에 돌아와 이 뉴스를 접했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피범벅된 하룻밤 부상시민 촛불이후 최대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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