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내의 한 고용주가 청소년들의 알바비를 떼어 먹고도 되레 청소년과 학부모에게 폭언을 가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  

19일 충남도청 브리핑룸에서는 청소년들의 알바비를 떼어 먹고, 해당 청소년과 학부모 등에게 폭언까지 일삼은 고용주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충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충남 서산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고용주 A씨는 지난해 12월과 올 3월 자신의 횟집에 고용했던 두 명의 청소년들을 상대로 임금 체불은 물론이고, 폭언까지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고용주 A씨는 고용당시 18세 미만이었던 청소년 Y와 K를 고용하면서 주 58시간 일하는 조건으로 130만원을 임금으로 지급할 것을 약속했다. 물론 이마저도 최저임금 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한 달을 4주로 잡아도 해당 청소년들이 받아야 할 임금은 월 150만원이 넘는다.

충남 서산에서 인권관련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신 아무개씨는 지난 7월초부터 해당 피해 학생들의 상담을 진행해 왔다. 불똥은 신 씨에게로 튀었다. 고용주 A씨는 지난 7월28일, 활동가 신씨에게 최저임금 미지급 사실을 시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고용주 A씨는 신 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에게 인성을 가르쳐야지 공갈협박을 가르 친다"며 "부모님이랑 통화할 테니 제3자는 빠져라"라고 말했다. 신씨는 또 고용주 A씨의 아버지로부터 "당신이 뭔데 (이 일에) 끼어드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고용주 A씨의 폭언은 학부모에게로 까지 이어졌다. 고용주 A씨는 청소년 노동자 K의 부모에게도 전화를 해 "자식 교육 똑바로 시키라"는 폭언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충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아래 센터)는 19일 "고용주의 A씨의 행동은 적반하장"이라며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센터는 "노동법을 준수해야할 사용주가 적반하장격의 태도를 취하며 되레 청소년과 보호자를 비난 협박한 사례가 충남에서 발생한 것이 씁쓸하다"고 밝혔다. 

센터는 이어 "고용노동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 되지 않도록 청소년고용사업장에 대한 지도 점검을 철저히 하라"며 "노동법을 위반하고 청소년과 보호자를 비난하고 협박한 고용주 A씨를 엄중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이재환 기자는 오마이뉴스를 소통창구 삼아 예산 홍성 등 내포지역에서 독립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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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충남 홍성의 지역 신문인 <홍주신문>과 <시사저널>(1455호)을 등을 통해 '오빠의 사망원인'을 밝히려고 노력 중인 이채윤(54 충남 홍성군)씨의 사연이 알려졌다. 지난 2015년 12월에 사망한 이채윤씨의 둘째 오빠 즉, 고 이두열씨의 사망 사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채윤씨는 지난 8월23일부터 9월11일 현재까지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 앞에서 "오빠의 사망 원인이 은폐되고 있다. 오빠 사건은 재수사 되어야 한다"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채윤 씨는 "오빠는 염산을 마시고 사망한 것이 확실하다"며 "오빠의 사인을 밝힐 수 있는 열쇠는 4월26일 대전국과수에서 홍성경찰서로 보낸 회신 내역에 있다"고 말했다.

이채윤씨가 대전과학수사연구소(아래 대전국과수)에 정보공개를 요청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홍성경찰서는 지난해 4월14일 대전국과수에 부검감정을 의뢰한 내역이 나온다. 이날은 고 이두열씨의 묘를 파묘한 날이다.  

뒤 이어 4월26일에는 부검감정서가 홍성경찰서로 전달(감정의뢰회보 생산)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감정의뢰회보란 대전국과수에서 홍성경찰서로 부검결과를 보냈다는 뜻이다. 이 내역에는 고 이두열씨의 시체번호(2016-*-****)가 정확하게 기입되어 있다.

하지만 이후, 회신 내역만으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5월9일 대전국과수는 고 이두열 씨의 부검감정결과에 대한 지연통보를 내린다. 정보공개 청구내용에 따르면, 이미 4월에 보낸 부검감정결과에 대해 지연통보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두 달 뒤인 7월11일, 고인 이두열시의 부검결과가 또다시 '생산'되어 홍성결찰서로 보내졌다. 이채윤씨가 오빠의 부검결과가 은폐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간혹 망자의 이름이 잘못 기재되어 부검감정서를 수정해 다시 보내는 경우는 있다"면서도 "부검감정서를 두 번이나 (경찰서로)보내는 경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보공개 청구내역이 사실이라면 이두열씨에 대한 부검감정서는 두 번 나온 것이 된다.

물론 이두열씨 사건을 담당했던 홍성경찰서는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이두열씨 사건을 담당했던 홍성경찰서 Y형사는 '4월26일자 부검감정서' 자체를 부정했다. Y형사는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4월26일에는 감정서가 나온바가 없고, 7월11일에 나온 감정서가 진본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 한 것이다.  

하지만 이채윤씨는 "이미 4월26일자로 부검결과가 나왔고, 4월26일자 감정서가 진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채윤씨가 경찰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더 있다.

대전국과수 회보 내역뿐 아니라 4월26일에 나온 감정결과를 직접 봤다는 증인도 있기 때문이다. 충남 보령시에 살고 있는 강 아무개씨는 증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지난해 2월, 강씨는 이채윤 씨에게 '오빠(이두열) 사건'을 평소 친분이 있던 부여경찰서 K형사에게 문의해 보자고 제안했다.

사건은 K형사가 소속된 부여경찰서가 아닌 이채윤씨의 연고지인 홍성경찰서에서 맡았다. 강씨는 K형사와 함께 지난해 4월27일 홍성경찰서를 방문했다. 바로 그날 이두열씨의 부검결과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4월26에 나온 이두열씨 부검감정서 직접 봤다"

 

 

 

홍성지청 앞에서 1인 시위중인 이채윤씨.ⓒ 이재환

 

 

기자는 지난 달 14일 충남 홍성의 모 커피숍에서 강씨를 만났다. 강씨는 "형사 K씨와 함께 지난해 4월 27일 홍성경찰서를 방문했다"고 주장했다. 강씨는 이날 이두열씨의 부검감정서를 직접 보았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수사기록을 무단으로 봤다는 사실만으로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사화해도 괜찮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강씨는 "상관없다"며 "진실을 밝히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항변했다.  

강씨는 "이두열 씨의 나이와 이름이 적혀있는 부검감정서를 봤다. 감정서에는 무정자증과 화학독극물이 언급되어 있었다"며 "2년7개월 화학독극물과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두열씨의 사망원인은 화학독극물, 즉 염산에 의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은 "이두열 씨가 염산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채윤씨의 주장과도 일치하는 결과이다.

이채윤씨의 눈에는 지난해 8월19일 대전국과수에서 보내온 부검감정서 자체도 이상해 보였다. 국과수 소장의 직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채윤씨는 "7월11일에 나온 감정서에는 국과수소장의 직인조차 없다"며 "하다못해 동사무소에서 등본 하나만 떼어도 구청장의 직인이 있는데, 부검감정서에 국과수연구소장의 직인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채윤씨가 대전국과수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부검감정서에는 대전국과수소장의 직인은 없다. 대신 법의관의 도장이 찍혀있다.

물론 경찰은 7월11일에 나온 부검감정서가 진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채윤씨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위해서는 일단 '국과수 회보' 내역의 진위 여부를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관련 기관은 이두열씨의 시체번호(2016-*-****)만으로는 홍성경찰서와 대전국과수 간에 오간 회신 내역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전국과수 관계자는 "회보 내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확인이 가능하다"며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중앙법의학센터 관계자도 "회보 내역은 수사기관이 아닌 언론에 확인해 줄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채윤씨가 대전국과수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얻어낸 자료이다. 이 내역 중에는 4월26일에 부검결과가 나왔다는 회보 내역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두열씨 사건은 전면 재수사되어야 한다. ⓒ 이재환

 

 

(해당 기사를 작성한 이재환 기자는 오마이뉴스를 소통 창구 삼아 예산 홍성 등 내포지역에서 독립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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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쓰이는 물건 일까요. 충남 예산군 삽교읍의 어느 찻집에 있는 재봉틀입니다. 1970~80년대 어머니들은 이 재봉틀 하나로 청바지와 바지 등 각종 옷을 수선했습니다.

재봉틀 하나만 있으면 옷감을 가져와 집에서 직접 한복을 지어 입었습니다. 재봉틀은 당시 어머니들을 만능 재주꾼으로 만들어 준 물건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도 일부 세탁소에서는 재봉틀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70~80년대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사용했던 바로 그 재봉틀은 참 오랜만에 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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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의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는 충남 예산 주민들이 7일 예산군 의회 의원들을 면담했다.

예산군 오가, 신암, 응봉 주민들은 "현재의 노선으로 공사가 진행 된다면 응봉, 신암, 오가, 대흥, 광시 등 예산군 5개면은 영원히 사람이 살기 어려운 희망 없는 지역으로 전락 한다"며 예산군 의회도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 반대'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김형용(오가면 분천리)씨는 "서부내륙고속도로의 노선은 마치 주거 밀집지역을 고의로 파고든 것처럼 설계가 되어 있다"며 "이처럼 어이없는 노선이 그려진 이유는 건설비용을 줄이기 위한 편법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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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종(응봉면)씨도 "주민들은 김현미 국토부 장관에게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을 전면 백지화하고,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예산군 의회도 주민들과 뜻을 함께해 달라"고 당부했다.  

주민들의 발언을 청취한 예산군의회의 모 의원은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 하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서울에서 귀농을 한 예산군민이라고 밝힌 안아무개(오가면)씨는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을 찬성하는 측은 크게 세 부류가 있다"며 "국책사업인데 반대해서야 되겠는가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 내 땅이 안 들어가니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의 무관심 파, 자기 땅이 포함되어 보상을 기대하는 경우"라고 밝혔다.

안씨는 이어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은 국책 사업이 아닌 민자 고속도로라는 점에서 사실 관계가 다르다. 또 내 땅이 아니니 무관심 하다는 사람들도 찬성론자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안씨는 또 "서부내륙고속도로가 자신의 땅을 통과해 보상을 받게 된다고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서울에서 귀농을 준비할 때 땅을 알아보려고 많이 돌아 다녔다. 그때 보니 고속도로 주변의 땅값이 가장 헐값이었다"고 말했다. 고속도로가 건설되어 땅값이 오를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기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안씨는 이어 "예산군이 지금처럼 귀농을 꿈꾸는 도시인들이 귀농하기 좋은 고장으로 남기를 바란다"며 예산군 의회 의원들은 군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또 다른 주민은 "물론 고속도로의 건설도 중요할 수 있다"며 "하지만 지금처럼 주민들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대도 막무가내로 도로 건설을 진행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예산군의회의 한 의원은 "예산군 의회 의원들 모두가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단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의원들만이라도 주민들과 뜻을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이재환 기자

 

(해당 기사를 작성한 이재환 기자는 오마이뉴스를 소통창구 삼아, 예산홍성 등 내포지역에서 독립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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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출근 시간 한 지방의 검찰지청 앞에서는 하얀 소복차림의 여성이 "오빠의 죽음을 재수사하라"며 1인 시위를 벌였다.

23일 오전 7시 30분. 이채윤씨는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 앞에서 소복을 입고 "오빠의 죽음이 은폐되고 있다. 진실을 밝혀 달라"고 호소했다.

이채윤 씨는 "소복을 입은 것은 오빠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한 것"라며 "오빠가 돌아가신 원인 밝혀져서 소복을 입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검찰이 불러만 준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수사에 응하겠다"며 "오빠의 사건을 하루라도 빨리 수사해 진실을 밝혀 달라"고 촉구했다.

이채윤씨는 지난 2015년 12월 사인불명으로 사망한 오빠 이 아무개씨의 사망 사건을 재수사해 달라며 최근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청와대는 이채윤씨의 탄원서를 홍성지청에 이첩한 상태이다.

이채윤씨는 지난해 초부터 "오빠의 죽음이 염산성분의 독극물과 관련이 깊다"고 주장하며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재환 기자는 예산 홍성 등 내포 지역에서 독립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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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사기점골 계곡에서는 매년 여름이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계곡 근처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식당에서 나오는 폐수와 이로 인한 냄새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가야산 인근의 주민들에 따르면 가야산 일대에서는 매년 여름 성수기가 오면 마치 떳다방 처럼 계곡 인근에서 식당 영업이 재개되고, 또 성행하고 있다. 계곡의 식당에서는 매년 여름이면 포장을 치고 보신탕과 백숙 등을 만들어 팔고 있는 것으로 전해 졌다.  

이와 관련해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주민 A씨는 "매년 6~8월이 되면 사기점골 계곡에서는 식당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지난 2014년부터 줄곧 지켜 봐 왔는데, 군청에서는 과태료 처분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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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기자는 제보자 A씨와 함께 사기점골 계곡을 찾았다. 계곡 주변에는 포장이 쳐져 있고, 그 안에 냉장고와 그릇, 후라이팬 등 식당 집기로 보이는 물건들이 가득 담겨 있다. 또, 인근에 있는 계곡에는 평상들이 가득 놓여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가야산은 덕산도립공원 안에 있다. 때문에 가야산 안에서는 허가 없이 식당을 운영할 수가 없다. 게다가 가야산은 허가된 건축물 외에는 텐트 하나 조차도 함부로 칠 수가 없는 지역이다.

이와 관련해 A씨는 "식당 영업은 보통 주말이나 쉬는 날에 이루어 진다"며 "자연공원법에 따라 도립공원 내에서는 식당을 운영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식당영업이 적발되어 과태료를 내더라도, 과태료 보다 식당영업으로 얻는 이익이 더 큰 탓인지 불법 영업은 근절되지 않고 매년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또 "여름철이면 반복되는 식당 영업으로 자연은 자연대로 훼손되고 있고,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식당에서 나오는 오폐수 냄새에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행정 당국은 과태료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보다는 행정대집행을 통해 해당 식당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 B씨도 "사기점골 계곡은 가야산에서 가장 아름답고 예쁜 계곡 중 하나"라며 "여름이면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 발을 담그고 놀기에 좋은 곳인데, 평상을 차려 놓고 식당영업을 하는 바람에 계곡물이 오염되어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해당 식당의 지속적인 불법영업을 참다못한 주민들은 국민신문고에 '식당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폐수가 하천으로 흘러들어 악취가 발생하고 있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해당 민원은 현재 충남도청 산림녹지과로 이첩되어 처리 중이다.

이와 관련해 충남도청 산림녹지과 관계자는 "예산군청에 확인한 결과 해당 식당은 최근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한 상태"라며 "빠른 시일 내에 현장을 방문해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곡에 설치된 평상, 물론 계곡에도 평상을 설치할 수가 없다.
 계곡에 설치된 평상, 물론 계곡에도 평상을 설치할 수가 없다.

 

 

오마이뉴스 이재환 기자

 

(해당 기자를 작성한 이재환 기자는 예산 홍성 등 내포지역에서 독립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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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억울한 죽음을 꼭 밝히고 싶다." 이채윤(54, 여, 홍성)씨는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오빠 이두열(62, 사망당시 나이)씨의 죽음을 파헤치고 있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있지만 포기할 수가 없다. 지금도 오빠의 사망원인이 '독극물에 의한 타살'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채윤씨는 "평소에 특별한 지병도 없었던 오빠가 갑자기 죽었는데 사망원인조차 제대로 밝힐 수 없다는 것이 억울할 뿐"이라며 "고통을 호소하던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말했다.

이채윤씨에 따르면 이두열씨는 지난 2015년 12월 7일 충남 천안의 모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물론 사망원인은 '불명'이다. 오빠의 죽음은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채윤씨는 뉴스를 통해 지난해 경기도 포천에서 있었던 제초제 살인 사건을 접했다. 해당 사건을 보고 난 직후 문득 오빠의 죽음이 뭔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채윤씨는 "오빠는 병원으로 실려 갈 당시 혀가 말려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물을 찾았다"며 "하지만 당시 의사는 이 사람은 마치 염산을 마신 사람처럼 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 이두열 씨의 당시 의무기록에는 호흡곤란 증세만 언급되어 있다. 

이채윤 씨는 또 "오빠가 쓰려졌던 날 오빠의 집에서 막걸리를 발견했는데, 막걸리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며 "당시에는 오빠가 썩은 막걸리를 마신 건가라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채윤씨는 오빠가 사망한 날 봤던 바로 그 '수상한 막걸리'가 오빠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래는 이채윤 씨의 증언이다.

"유감스럽게도 병원 의무기록지에는 호흡곤란 외에 오빠의 정확한 사인이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오빠가 평소 마셨던 막걸리에는 분명히 염산 성분이 들어 있었을 것으로 확신 한다. 당시 의사는 오빠의 몸이 알카리성에서 산성으로 바뀌어 물을 주어도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염산을 마셨을 때 일어나는 전형적인 반응 중 하나라고 한다. 

실제로 순천향대학교 홍 아무개 박사는 '설명 안 되는 산증의 경우, 부동액을 2컵 이상 마시거나, 염산을 마셨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범죄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면 경찰에 신고해 부검을 요청하는 것이 순서이다'라는 글을 보내 왔다. 이를 근거로 부검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16년 4월 이채윤 씨는 오빠의 사망과 관련해 의심이 가는 용의자를 지목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채윤 씨는 또, 경찰 입회하에 오빠 이두열씨의 무덤을 파고, 시신을 국과수에 부검 의뢰한 것이다. 이는 이두열 씨가 사망한지 5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국과수 부검 결과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이채윤 씨는 부검결과를 기다리며 경찰과 수차례의 문자와 통화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경찰은 "부검결과는 나오지 않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고인 이두열씨에 대한 부검 결과는 4개월이나 지난 뒤인 7월 8일에 나왔다. 물론 결과도 이채윤씨의 예상과는 달랐다. 부검결과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은 지난해 8월, 해당 사건을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채윤씨는 오빠 이두열씨가 염산이 함유된 독극물에 의해 사망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 이재환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 지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채윤씨는 최근 국과수에 정보공개를 요청한

결과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오빠 이두열 씨의 부검 결과가 이미 지난 4월 H경찰서로 보내졌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채윤 씨는 "경찰이 7월까지도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던 부검 결과는 이미 지난 4월에 나와 있었다"며 "검찰은 지난 4월에 나온 부검 결과와 그 내용을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7월에 나온 부검결과를 토대로 오빠의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4월의 부검 내용에는 오빠의 사망원인이 약물이나 독극물로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4월에 나온 부검 기록을 봤다는 증인도 있다. 이를 확인할 수만 있다면 오빠의 사건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다. 오빠 이두열 사망 사건은 반드시 재수사 되어야 한다" (이채윤씨의 증언)

이에 앞서 이채윤씨는 지난 6월 28일 해당 사건을 "재수사 해 달라"며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다. 청와대는 지난 7월28일 이채윤씨의 민원을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으로 이첩한 상태이다. 하지만 홍성지청은 해당 사건을 처리하는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일 평화인권연대 집행위원장은 지난 7일 이채윤씨와 동행해 홍성지청을 방문했다. 이와 관련해 김용일씨는 "이채윤씨는 오빠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고 검찰 조사를 차처하고 있는데, 담당 검사는 면담조차 거부하고 있다"며 "검찰은 이채윤씨가 새로운 증거를 제시겠다고 나선 만큼 이 사건을 적극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사건이 이첩된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 관계자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어떤 내용도 확일 해 줄 수 없다"며 "당사자(이채윤씨)를 불러 조사할지 여부는 해당 검사가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 이재환 기자는 홍성 예산 등 내포지역에서 독립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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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강철 무지개>의 제작을 준비 중인 이민용 감독은 "주인공인 윤봉길 의사 역은 현빈, 김우빈, 송중기 중 한사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민용 감독은 28일, 영화 <강철 무지개>의 홍보차 '내포 가야산 영화캠프'에 참석했다. 윤봉길 의사는 상해 의거로 꺼져 가던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려 낸 인물이다. 하지만 윤의사를 주제로 한 영화는 1947년 윤봉춘 감독의 <윤봉길 의사>가 전부이다.

<개같은 날의 오후>(1995)와 <걸어서 하늘까지>(1992) 등을 연출했던 이민용 감독은 오랜 침묵을 깨고 윤봉길 의사를 다룬 영화 <강철 무지개>를 통해 재기를 꿈꾸고 있다.

이민용 감독은 "강철 무지개는 이육사의 시 절정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이름"이라며 "영화는 한중일 삼국을 넘나드는 첩보 액션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또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일으킨 시점은 임시정부의 재원이 바닥이 날 정도로 어려운 때였다"며 "윤 의사의 상해 의거를 계기로 세계만방에 대한민국의 독립의지를 알리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 감독은 윤봉길 의사의 어린 시절 장면은 윤 의사의 고향인 충남 예산에서 촬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 감독은 "윤봉길 의사는 11살 때 한내(예산군 고덕면)장터에 나갔다가 독립만세운동을 목격했다"며 "윤 의사는 한내 장터에서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모습을 보고 독립운동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충남 예산군 고덕면의 옛 이름인 한내에서는 1919년 4월3일 독립만세 운동이 벌어졌다. 당시 윤봉길 의사도 한내 장터의 만세 운동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이민용 감독은 영화의 제작이 늦어지는 것과 관련해 "중국 자본과 영화 제작 투자를 협의 하던 과정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가 불거져 협상이 틀어졌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중국 자본과 투자 문제를 다시 논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늦어도 3.1 운동 100주년인 오는 2019년까지 영화를 제작해 상영하고 싶다"며 "분단 이래 최초로 서울과 평양에서 영화를 동시에 개봉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민용 감독의 친 누이인 가수 임희숙씨도 이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함께 왔다. 이 감독과 임희숙씨는 아버지가 다른 남매이다. 임 씨는 자신의 히트곡 <진정난 몰랐었네>와 <어떻게 좀 해봐> 등을 불렀다.   

임희숙 씨는 출연료로 고추장과 된장을 받아갔다. 남동생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사실상 출연료를 받지 않은 것이다. 

 

 

 

( 해당 기사를 작성한 이재환 기자는 홍성 예산 등 내포지역에서 독립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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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작가 "짧은 줄에 묶어 키운 개가 더 공격적"

지난 20일 충남 홍성에서도 개가 사람을 문 사건 발생

 

 

한때 언론인들 사이에서는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 되도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는 말이 유행했다. 평범하지 않고 특이한 사건이 기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개가 사람을 무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연일 기사화되고 있다. 지날 달 14일 서울 창동 주택가에서는 지나가던 행인들이 맹견 2마리에게 물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지난 7일 안동에서는 70대 노인이 자신이 기르던 풍산개에 물려 숨진 사건도 있었다. 

지난 20일 충남 홍성에서는 목줄이 풀린 진돗개가 지나가던 70대와 80대 고령의 노인 2명을 물어 수술까지 받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홍성 경찰서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현재 '과실 치상 혐의' 등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다.

홍성경찰서 형사팀 관계자는 "물지 않는 개는 없다"며 "반려견과 외출시에는 반드시 목줄을 채우고, 때에 따라서는 입마개까지 씌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개는 반려동물 이전에 주인을 안전과 생명을 지키던 수호자의 역할을 하도록 키워졌다. 개가 낯선 사람을 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종종 "우리 개는 착해서 물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사람을 무는 개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동물복지 전문가들은 문제 개의 뒤에는 문제 주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의 저자 이형주 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주인과의 교감이 없고, 긴장상태에서 자란 개일수록 사람을 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형주 씨는 동물복지 운동을 펴고 있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다음은 이형주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사람을 잘 무는 개가 있는 것인가, 개들이 사람을 무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특정 종의 개가 사람을 더 잘 무는 것은 아니다. 그런 통계도 없고,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바도 없다. 다만 견주의 부적절한 사육법 때문에 개가 공격성을 갖게 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 개와 견주 사이에 충분한 교감이 없고, 운동량이 부족할 경우 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그런 개들이 사람을 물고, 짓는 등의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 견주의 책임이 중요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다른 개나 사람들과도 접촉을 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보통 묶어서 기르는 개들에게 공격성이 더 많이 나타난다. 묶여 있을 경우, 개들도 자신이 위험에서 피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공격성이 더 가중되는 것 같다. 물론 외출시에는 반드시 목줄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집 안에서는 목줄을 하지 않고 키울 필요가 있다.

- 묶어 놓고 기른 개들이 오히려 더 공격성이 강하다는 뜻인가
사람들은 개를 묶어서 키우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와 정 반대이다. 짧은 목줄에 묶인 개들 일수록 공격성이 강하다는 것은 이미 많이 연구가 된 상태이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개를 묶어서 키우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한 주가 많다. 개를 짧은 줄에 장시간 동안 묶어 놓고 방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개가 공격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주인의 책임을 법적으로 명확하게 명시할 필요가 있다. 사실 동물의 습성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의외로 많다. 동물의 습성을 이해 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의무화 할 필요가 있다. 

 

(이재환 기자는 충남 홍성과 예산 등 내포지역에서 독립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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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귀촌 2년차, 박지용 유혜선 부부

 

'시골가서 뭐 먹고 살지'라는 걱정 때문에 귀촌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난 2015년 2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로 귀촌한 서른여덟 살 동갑내기 부부 박지용, 유혜선 씨의 얘기를 들어 보면 용기가 생길 수도 있다.

박씨 부부는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의 두 남아를 키우고 있다. 부부는 최근 집을 짓느라 8천만원의 빚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박씨 부부는 "살면서 차차 갚으면 된다"고 말했다. 

박씨 부부는 "우리가 귀촌에 성공한 것도 아닌데, 인터뷰 대상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귀촌을 통해 삶의 다른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을 기꺼이 누릴 수 있는 용기 자체가 소중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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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용(38)씨는 지난 2012년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핀란드로 유학을 떠났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박 씨는 핀란드에서 가구 디자인을 공부했다. 하지만 유학생활을 접고, 박씨 부부가 선택한 곳은 서울이 아닌 시골이었다.

박 씨 부부는 시골에 와서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었다. 애초부터 귀농이 아닌 귀촌생활을 염두하고 시골로 온 것이다. 물론 부모님 소유의 땅에 심은 밤나무에서 밤을 수확해 팔고는 있지만 본업은 아니다. 박씨 부부의 '용감한 귀촌 생활기'를 들어 봤다.   

 박지용 유혜선 씨 부부는 지난 2015년 충남 예산으로 귀촌했다. 부부는 아직 아직 풀어야할 과제가 많다고 했다.
 박지용 유혜선 씨 부부는 지난 2015년 충남 예산으로 귀촌했다. 부부는 아직 아직 풀어야할 과제가 많다고 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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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귀촌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박지용 : 건축사무소에 다닐 때 너무 힘들었다. 공개입찰과 비슷한 현상설계 일을 하다 보니 주당 90시간에서 100시간까지 일할 때도 많았다. 물론 중간에 10일 정도 쉬는 날도 있었다. 건축일은 야근이 많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핀란드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핀란드에서 공부하는 동안 과연 내가 한국에 돌아가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유혜선 : 서울에 살 때는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남편의 핀란드 유학시절에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꽤 많았다. 서울로 돌아가 맞벌이를 하며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회의가 들었다. 마치 내가 사회의 부속품처럼 소모되는 것 같은 느낌도 싫었다.  

유학을 떠나면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정리했다. 유학생활로 모아 놓은 돈도 거의 다 썼다. 솔직히 다시 서울로 돌아가 사는 것도 막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다. 시골에 살 수 있는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집은 시부모님의 소유이다.

-남편 지용씨의 경우 시골 생활을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서울의 강남 출신으로 알고 있다.
박지용 : 태어난 것은 강북에 있는 북가좌동이고, 다섯 살 때부터 강남에서 살았다. 시골에 대한 애틋함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재래식 화장실에서 똥을 푸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막상 닥치니까 다 하게 되더라. (웃음)    
 
-아직은 힘든 것이 많아 보인다. 귀촌 생활은 만족 스러운가.
박지용 : 사실 나는 100% 만족한다. 건축을 전공하고 지금은 가구 디자인 쪽 일을 하고 있다. 가구 디자인은 혼자 일을 해도 무리가 없다. 서울에서 디자인을 하나 여기서 하나 큰 차이가 없다. 장소의 제약이 없는 것이다. 시골에서 디자인을 하는 게 심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그래도 불편한 점은 있을 것 같다.
박지용 : 사실 시골에서는 돈을 쓰기 위해서는 멀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돈을 쓸 일이 없다. 하지만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상당히 바빠지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지기 시작했다. 물론 손수 집을 짓고 있기 때문에 인건비는 아끼고 있다.

"귀촌을 배려하지 않는 귀농 중심의 지원 정책 아쉬워"

-귀농인을 지원하는 정책은 많은데, 귀촌 가구를 지원하는 정책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박지용 : 관청에서 일정한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춰 지원을 받고 싶으면 받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라는 식의 정책이 많다. 귀촌을 한 사람들도 무언가 지원을 받으려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지원을 받아 농가 주택 개량사업을 하려고 했는데, 200시간의 강의를 수강할 것을 요구했다.

유혜선 : 귀농이 아닌 귀촌 가정에게 관청에서 요구하는 교육은 실효성이 없다. 고추와 같은 농작물을 키우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식이다. 물론 이런 교육은 귀농인 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농업이 아닌 타 업종에 종사하는 귀촌인 들에게 그런 교육은 시간 낭비일 수밖에 없다.   

- 귀촌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선배로서 조언하고 싶은 것은 없나. 
박지용 : 한 달에 100만원씩 쓸 것을 생각하고, 적어도 2년 정도는 먹고 살 돈을 마련해야 한다.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오자마자 직장을 잡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 2년 정도 버티다 보면 길이 보이기도 한다.

유혜선 : 귀촌을 해서 놀랐던 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은 뜻이 맞는 분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귀농과 귀촌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과 연계해 체험도 하게 하고,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일종의 코디네이터 관련 일을 준비 중이다. 

- 농사를 주업으로 할 생각 없는 것 같다.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나.
박지용:  지금 현재 공방을 차리고, 밤농사도 짓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 할 수 있는 디자인 회사를 만들고 싶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에서 독립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유혜선 : 사실 최근에는 남편과 함께 회사도 하나 차렸다. 월급생활을 할 때는 나라에 세금도 꼬박 꼬박 냈는데, 지금은 세금을 낼 루트가 없어졌다. 본격적인 경제생활도 하고 세금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금 내고 싶어 회사 차린 특이한 부부, 왜?

-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금을 조금이라도 덜 내려고 기를 쓰는데, 특이한 것 같다.
유혜선 : 우리는 아이들도 키우고 있다. 해야 할 의무는 다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지용 : 핀란드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세금을 많이 내지만 크게 불만을 갖지 않는다. 세금을 많이 내는 만큼 혜택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기존의 가치관이나, 생활 습관 등 시골에 와서 특별히 버린 것이 있나? 
박지용 : 버려할 것이 너무 많다. 우선 백옥 같은 피부도 버려야 하고 (웃음).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유혜선 : 시간에 대한 강박을 버렸다. 도시에 살 때는 뭔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제 시간 내에 끝내야겠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밥도 두끼만 먹는다. 우리 가족에 맞는 사이클에 맞춰 살고 있다. 유행을 쫓는 삶도 버렸다.  

무엇을 누리며 사느냐 보다는 내가 누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벌레나 곤충은 적응이 안 된다. 하지만 삶의 소중한 부분을 깨닫게 되면서 점차 적응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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