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가끔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 모씨 덕분에 공권력에 대한 '신뢰'는 이미 사라졌고, 이명박씨 덕분에 정치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도 무너졌다. 물론 경제성장이나 교육 정상화에 대한 기대는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뢰의 붕괴의 붕괴는 결코 경제적인 가치로 따질 수 없는 것들이다. 신뢰를 쌓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토록 중요한 신뢰가 요즘 차례로 무너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는 9일 이명박씨가 '국민과의 대화'를 시도한다고 한다. 소통이나 대화는 이 정부 들어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볼 때 이명박씨의 대화법은 언제나 '혼잣말'이었고, 그의 소통방식은 대체로 '일방 통행'이었다.

그가 굳이 추석 직전인 9일을 '국민과의 대화'일로 정한 것은 아마도 '추석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추석에 온국민이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모여 그에 대한 '악평'을 쏟아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이다.

그 때문일까. 이른바 '국민과의 대화'의 날에는 TV를 아예 꺼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물론 그 이유는 이명박씨에 대한 '유감'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그동안 수시로 소통을 말하면서도 정작 소통은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단순히 립서비스뿐이라면 그의 모습이나 이야기는 이제 더이상 보기도 듣기도 싫은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번 기회에 그에게도 '불통'이 얼마나 답답한 것인지를 알려 주고 싶은 심정이다. 타인의 말을 귀기울여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과 대화를 시도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 일인지 이번 기회에 그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상당수의 국민들이 그에게 느꼈을 '감정'을  그도 똑같이 느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흥미로운 상상을 하나 해보자. 만약 '국민과의 대화' 시간에 전 국민이 동시에 텔레비전을 꺼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금 양보해서 다수의 국민들이 '국민과의 대화'를 외면해 시청률이 1-2% 밖에 안나온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이명박씨는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런게 불통의 속성이다. 이는 실제로 그동안 국민들이 그의 말이나 행동에서 느꼈던 답답함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그가 말로만 하는 사과나 변명을 되풀이 하며 언행의 불일치를 보인다면,  그나마 '본전'을 건지기도 어려울 것이다.

소설을 읽었던 기억

내멋대로 칼럼 2008.08.28 17:05 Posted by 이재환

요즘은 좀처럼 소설을 읽기가 어렵다.

긴 호흡의 문장도 싫고, 소설을 통해 공감 가능한 '허구'를 찾아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내 상상력은 갈수록 곤핍해지는 듯 보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애초부터 긴호흡의 장편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때는 한국 단편 소설에 심취해 1920-30년대의 나도향이나 염상섭 김동인 등의 작품을 모조리 읽었던 기억이 난다. 모두 장편이 아닌 단편 소설이었다.

이런 편향은 영미 문학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마크트웨인의 단편 소설만 골라서 읽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나마도 읽지 않는다. 요즘은 소설 대신 주간지를 읽고, 인터넷으로 신문 기사를 주로 살핀다.

그 안에는 소설 보다도 더 소설같고, 드라마 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내용들이 많다. 차라리 현실이 아닌 소설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건'도 그만큼 많은 것이다.

어느 순간 나는 '현실없는 소설'이 아닌, 소설같은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살고 있다. 소설의 긴호흡을 따라 세상을 관망하기에는 세상은 어느새 너무도 많이 그리고 너무나도 복잡하게 변해 버렸다.

자꾸만 '부메랑'이 떠오른다

내멋대로 칼럼 2008.08.06 20:12 Posted by 이재환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다 보면 부메랑이란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미래를 생각하기는커녕 앞뒤 안가리고 설치는 정권과 그 하수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저들은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머지않아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다. 단 한수 앞도 못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과연 자신들에게 돌아갈 부메랑을 피할 수 있을까. 또한 저들은 부메랑의 강한 회전력을 의연하게 견뎌 낼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앓는 소리하며 온갖 비굴한 짓을 다 할 사람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최근의 '정권 위기'는 방송을 장악하고, 인터넷 여론을 통제한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존심과 감정에 심각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 그런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고 오래가는 법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은 고사하고 방송도 없던 고려나 조선 시대에 민중의 궐기나 항쟁이 가능했던 이유를 잘 살피길 바랄 뿐이다. 그 옛날의 민중들은 오랫동안 분노와 감정을 억누르다가 어느순간 갑자기 폭발해 버렸다. 그것은 인터넷이나 방송의 도움 없이도 '이심전심'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다.

시기나 시점의 차이만 있을 뿐 억압된 분노는 어떤 형태로든 폭발하게 되어 있다. 다만 그것이 많은 시민의 희생이 따르는 항쟁의 형태가 아니라, 선거를 통한 깔끔한 복수가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독도파문, 잘 짜여진 각본같다

내멋대로 칼럼 2008.07.31 14:38 Posted by 이재환
한겨레
미 지명위원회 독도 영유권 표기 원상회복

지난주 미국 지명위원회(BGN)에 의해 ‘미지정 지역(Undesignated Sovereignty)’으로 변경됐던 독도의 영유권 표기가 일주일만인 30일 ‘한국(South Korea)’과 ‘공해(Oceans)’로 각각 원상회복됐다. 이런 조처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이날 독도표기를 분규 이전상태로 원상회복하도록 지시한 뒤 곧바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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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움직임이 '일사 분란'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다.

최근 미국 지명위원회에 의해 '미지정 지역'으로  표기됐던 독도가 다시 한국령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나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한미 동맹이 급속히 강화된 탓일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편의 잘 짜여진 각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지 않아도 얼마전 미의회도서관은 독도관련 지명표기를 변경하려다 한국계 미국인의 이의제기로 좌절된 사례가 있다. 그동안 내둥 가만히 있다가 뜬금없이 독도의 지명 변경을 시도했던 미의회도서관 측의 움직임도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더구나 당시는 '일본의 해설서 파문'으로인해 독도문제가 한일 양국 사이에 매우 민감한 의제로 떠오르던 참이었다. 이런 정황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이 독도의 지명을 임의로 변경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상당한 결례이다.  다행히 미국의회도서관의 독도 지명변경 시도는 한 때의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미의회도서관의 독도지명변경이 좌초되자 이번에는 미국 지명위원회가 나섰다.  이때 까지도 미국이 작정하고 독도를 한국령에서 제외하려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묘하게도 미국이 이를 번복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딱 일주일 만이다.  단 며칠도 안돼 번복할 일에 대해 미국은 어째서 그토록 집착한 것일까.

맞다. 일종의 '음모론'이다. 한국의 역대 정권들은  정권에 위기가 닥칠 때 마다 일본의 '독도 도발 문제'를 정국 돌파의 계기로 삼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권은 촛불정국을 통해 심각한 민심이반을 겪고 있는 상태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나쁠게 없다. 부시 대통령의 방한 전에 한국에 '깜짝 선물'을 선사하는 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그것을 재확인해 주는 것은 크게 부담스런 일이 아니다.

부시가 방한해서 할 일은 별로 많지가 않다. 기껏해야 한미동맹강화라는 원칙론의 재천명과  'FTA 비준 문제를 재확인'하는 수준일 것이다. 물밑에선 미국의 재고무기를 한국에 팔 수있는 협상만 벌이면 된다. 여기에 한국 관광(경주나 민속촌)을 통해 미국대통령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한국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만 하면 미국에 대한 한국민의 이미지 재고도 가능하다.
독도 표기문제 하나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이처럼 크다. 더구나 독도는 어차피 한국땅이다. 그것을 재확인해주는 것만으로도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많은 것이다. 이번 독도 문제가 잘 짜여진 '각본'처럼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때문이다.

[미주알 고주알 칼럼]

미국 중국 북한에 대한 외교 실패(?)에 이어 이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까지 나왔다.  14일 일본은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담은 중학생용 '학습지도 해설서'를 발표했다.

지난 촛불정국에서 상당수의 국민들은 이른바 'MB식 외교'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 왔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그런 의문에 마침표가 찍힌 듯 싶다.

더구나 지난 대선과정에서 그가 유일한 '무기'로 내세웠던 고도의 ' 경제성장'도 국내외 사정으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이다. 오히려 집권초부터 '고환율 정책'을 고집하다 물가 상승만을 부추기며 서민경제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MB(이명박)는 최근 촛불정국을 촉발한 '원인'을 무시한 체 무리하게 촛불끄기 작전에 돌입, 민심까지도 잃고 말았다. 한겨레 신문의
7월 15일자 만평은 그런 MB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MB는 최근 좀처럼 민심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국가안보나 경제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외교까지도 신통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그의 국방에 대한 철학이나 인식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민심 수습 실패와 난항에 부딪친 외교문제에 이어, 국방에 대한 소신이나 철학까지도 없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그의 행보를 보면, 과연 그가 국방에 대한 철학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국방은 두말할 필요없이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한국 군대의 목적은 침략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적국에 대한 도발이 아닌 '전쟁을 억제'하는 기능을 우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군이 갖춰야 할 '전쟁 억제력'의 경우 비단 북한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틈만 나면, 대륙 침탈을 노리는 일본이나 한반도에 끊임없이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난 정권들에서 북한에 대한 주적 개념을 놓고 논쟁을 벌인 이유 중 하나기이도 하다. 결국 그런 인식은 통일 이후까지도 대비하는 한국군의 '미래 전략'과도 관련이 깊은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MB는 국방에 대한 미래 지향적 인식은커녕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에서도 삐그덕거리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당시 고소영 강부자 내각과 촛불집회 등의 문제로 크게 이슈화되지는 못했지만, 지난 5월 MB는 공군의  '서울비행장 이전 문제'를 언급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주간동아에 따르면 당시 MB는 "도시는 옮길 수 없지만 군부대는 옮길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런 MB의 발언은 곧바로 "군통수권자로서 성남기지(서울공항)의 가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
관련 기사)

MB의 최근 행보를 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눈에 들어온다. 사안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나 정확한 원인 분석없이 무조건 밀어 붙이려다 사태 수습에 실패하거나 일을 그르치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그가 촛불민심을 대하는 과정이나, 외교 행보, 경제에 대한 시각 등을 살피다 보면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더구나 그런 문제가 '국방에 대한 인식'으로 까지 이어질 조짐이 보인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오마이뉴스 이재환)

경향신문
MB독트린 6개월, 사면초가

일본 정부가 지난 14일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중등 사회교과서 해설서에 명기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대일 외교에 결정적 타격을 안겨준 동시에 실용주의를 내세운 이명박 외교정책 전체를 흔들고 있다. 정부가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정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이 오히려 미국과의 관계를 서먹서먹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고, 중국이 한·미동맹 강화에 대해 견제구를 날리는 상황에서 일본마저 이명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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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 시국미사 행진, 평화롭게 마무리
뷰스앤뉴스 최병성 기자

7만여명의 장엄한 촛불행렬이 30일 밤 10시께 서울광장에 모두 도착해 자진해산했다. 아직도 5천여명의 시민들이 광장 곳곳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지만 가두행진 등 추가 집회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모처럼 평화로운 촛불집회 분위기를 되찾았다.

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는 "오늘은 반드시 집회를 평화적으로 마무리지어야한다. 우리의 의지를 평화적으로 저들에게 보여줘야한다"고 호소한뒤 "내일부터 다시 매일, 촛불을 들자"고 여러 차례 평화집회를 호소했다. 김 신부는 그러면서도 "7월 5일 전국 집중 촛불 집회도 잊지 말아달라"며 "평화적인 비폭력의 촛불은 아직 꺼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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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미사 동영상 보기

3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는 감동 그 자체였다. 공권력의 강경진압으로 시민들의 몸과 마음에 상처가 깊게 생기던 시점에서 사제단의 미사는 '촛불'에 큰 힘을 실어 준 듯 보인다.  

이날 모처럼 평화로운 집회를 보며, 감동은커녕 '꼼수'로 위기를 넘기려 드는 정부가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사제들이 보여준 촛불 해법, 발상의 전환
 
사제단의 시국미사가 감동적인 이유는 촛불 민심을 정확히 읽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성명을 발표해서만은 아니다.  

이번에 사제단이 보여준 '발상의 전환'은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촛불은 '몇만 촛불 모이자'하며 지나치게 촛불의 숫자에 집중했다. 물론 이것은 경찰에 의해 여지없이 축소 발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종의 선전전인데, 광우병 대책위가 10만 촛불이 모였다고 밝히면 경찰은 이를 1-2만 정도로 대폭 줄여서 발표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

사제단은 그들 특유의 지혜로움으로 이런 논란을 단숨에 불식시켰다. 그 뜻이 거룩하다면, 시민들은 그것을 명분삼아 알아서 모이게 된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촛불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모인 숫자가 정 궁금하다면 촛불집회에 직접 나가 각자가 확인하면 될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촛불집회에는 강박증이 하나 생겼다. '청와대 진격'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대통령에게 촛불의 뜻을 가까이서 전하고 싶은 의지는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그 뜻을 진심으로 받아 들일 의사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촛불들은 청와대 진격과정에서 '명박산성'에 가로 막혀 정부가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것만 재확인했을 뿐이다. 그 와중에 촛불들은 경찰의 강경진압으로인해 물대포와 방패, 곤봉으로 실컷 두들겨 맞기도 했다.  

그러나 사제단은 이런 정공법 보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우회로를 택했다. 북쪽의 청와대를 버리고, 남쪽으로 행진을 시작한 것이다. 사제단의 이런 발상은 최근 경찰의 강경진압에 번번히 말려들던 촛불들에게 한박자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최근 일부 언론에 의해 왜곡되고 있는 촛불에 대한 '오해'도 불식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소통이 안되는 청와대 보다는 소통 가능한 '민심'을 먼저 끌어 안자는 사제단의 행진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촛불정국 장기화 누구 탓인가?

내멋대로 칼럼 2008.06.26 09:38 Posted by 이재환
하룻밤 자고 일어 나면, 밤새 어떤 사건 사고가 터져 있을지 모를 안개정국이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고시 강행' 방침을 밝히면서 어제밤 시위가 격렬했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시위가 격렬했다기 보다는 공권력의 진압의 수위가 이전보다 훨씬 강경해 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촛불정국을 조기에 수습하는 문제가 절실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민심을 추스리는 방식이 아닌 강경 진압의 형태라면 그것은 대단한 오판인 듯 보인다.

실제로 '고시강행' 직전의 정부의 태도를 살펴 보면, 정부와 촛불민심의 극한 대립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미국과의 추가 협의(논의?) 직전 '30개월 이상의 소만 들여오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민심을 자극했다. 이것은 촛불 민심의 요구와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었다.  

촛불 민심은 '30개월 미만은 물론이고, 광우병 위험물질(srm)까지도 수입 금지 조치 할 것'을 요구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시민들의 요구를 '30개월 프레임'에 가두고 만 것이다.

정부가 촛불 민심을 제대로 읽었더라면, 정부는 '국민 여러분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제스쳐를 보였어야 한다. 물론 우리 정부는 이와는 정 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떨어져 나간 민심은 결코 쉽게 되돌아 오지 않는다. 정부가 무모해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에 하나,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 한나라당내 연구소의 여론 조사 결과를 믿고, 이런 행보를 보인 것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이 정부 최대의 실수일 것으로 보인다.

누리꾼 '권위'에 저항하다

내멋대로 칼럼 2008.06.22 00:42 Posted by 이재환

촛불집회 초기 경찰의 연행이 시작되자 시민들은 "나도 잡아가"라는 구호와 행동(닭장차투어)으로 맞섰다. 최근 '조중동 광고끊기 공세'에서도 이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단 박스기사 참조)

시민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비상식적 권위주의'에 반발하고 있는 듯 보인다. 촛불 정국에서 시민들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보도 태도를 직시했고, 언론의 문제를 논리가 아닌 체험으로 알아 버렸다. 그래서 촛불이 언론으로까지 옮겨 붙은 것이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이번 촛불 정국을 철저히 분석해 깊이 이해하고, 더나아가 반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한나라당은 인터넷이나 여론의 선전전에서 승리했다. 그 이유는 한나라당이 인터넷의 부정적인 여론을 적절히 견제했기 때문이 아니다.

지난 대선 당시의 분위기는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에 대한 심판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반 노무현' 정서가 일부 젊은 층에게 까지 팽배해 있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어르신들이 싫어하던 '노무현을 찍은 원죄'로 인해 정치적인 언급을 스스로 자제한 측면이 강했다.

젊은 층의 특성은 마땅한 대안이 없을 때, 정치적으로 잘 나서지 않는 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세운 정권에 대한 실망, 그리고 대안의 부재. 바로 이런 '심리적 패배감'이 작용해 지난 대선에서 인터넷이 잠잠했었던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인터넷이 잠잠했던 이유를 선거운동 기간을 기존보다 확대해 제한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큰 구실이 될 수 없다.  

요즘은 인터넷 댓글을 실명으로 하든, 아이디로 하든 할 말이 있으면 곧죽어도 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지난대선에서 젊은 층들은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으로 방관자의 입장에 서있었다. 그랬던 그들이 지금, 그들의 눈에 부당해 보이는 '권위 주의' 앞에서 자신의 '속살'까지 드러내며 당당하게 커밍아웃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점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사이드카'와 같은 여론 통제의 성격이 다분한 정책이나 인터넷 실명제는 누리꾼들에게 '장벽'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안되면 돌아서가고'라는 '되고송'처럼 인터넷은 얼마든지 우회가 가능하다.

따라서 국회가 정상 가동된 후에 다수당이란 이유만으로 반서민적인 정책을 밀어 붙인다면, 촛불이 한나라당을 겨눌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으로 다수 여당을 견제할 특별한 수단이 없는 이상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촛불 정국의 상황을 잘 면밀히 살펴 보면, 이런 시나리오가 그다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한나라당이 지난해 대선에서의 승리를 "부정적인 여론을 적절히 견제했기에 가능했다"고 판단 한다면, 그것은 완벽한 오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2의 "자수합니다" 저항 촉발
네티즌 검찰의<조중동> 광고끊기 처벌 경고에 반발
뷰스앤뉴스 김혜영 기자

검찰이 <조중동> 광고끊기 공세를 펴는 네티즌들을 기업의 고소고발 없이도 인지수사할 수 있다는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자,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네티즌들의 수백개 비난 댓글이 쇄도하고 있다.

대검찰청 홈페이지는 지난해 7월 인터넷실명제를 도입하고 있음에도 네티즌들은 거침없이 검찰을 질타하며, 지난달 경찰의 촛불집회 참석자 강경대응때와 마찬가지로 "자수합니다"라며 자신의 광고끊기 전력을 공개하고 있다. 제2의 '자수합니다' 저항이 시작된 양상이다.

'김규화'는 "내가 거래하고 있는 증권회사, 내가 신고 다니는 신발제조회사, 내가 즐겨 가는 백화점에 전화를 해서 내가 싫어하는 신문에 광고를 내지 말아 줄 것을 요구 했습니다"라고 밝힌 뒤, "내가 내는 돈이 내가 싫어하는 신문사에 들어가는 게 싫어 요구했는데 죄가 되나요? 법을 위반하는 줄 모르고 그랬는데 죄가 되면 처벌하세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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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소강국면일 때 몸사려야

내멋대로 칼럼 2008.06.17 18:34 Posted by 이재환
최근 한나라당과 정부는 촛불시위 과정에서 나온 각종 정책적 의제가 확대 재생산 되는 것을 경계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의 각종 정책, 구체적으로 대운하, 민영화, 교육 문제 등은 촛불집회 초기부터 '자유발언'의 단골 메뉴였다. 실제로 이것은 언제든 이슈로 재점화되어 '확전'의 소지를 갖추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최근 광우병대책위가 이 문제를 가지고 성급하게 '정권 퇴진 운동까지 불사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촛불시위대 내부에서도 찬반 여론이 일고 있다. 이런 여론의 움직임은 '정권에게도 숨돌릴 기회를 주면서, 여론도 재정비'하는 소강상태의 국면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쇠고기 문제는 이번 사태의 실마리를 푸는 단초에 불과하다. 정부가 앞으로 또다시 쇠고기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보인 것과 똑같은 행태로 정책을 추진한다면 촛불은 또다시 타오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최근 정부나 여당의 일각, 혹은 이문열과 같은 보수계열 인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를 듣다 보면, 촛불에 불당길 소리들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그동안 정부가 촛불의 민의와는 동떨어지는 발언을 일삼다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정부나 여당은 잠시 소강국면으로 들어선 듯 보이는 촛불에 안심해선 안되는 시점이다.

정부나 여당이 촛불이 경고한 '메시지'를 잊어버리고 엉뚱한 방향의 대책을 내놓거나, 전과 같은 행태를 반복 한다면, 그것은 한나라당과 정부뿐 아니라 온국민의 불행이 될 것이란 게 내 판단이다. 부디 MB나 한나라당이 오판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관련기사 링크> 위험스런 발언들
MB "신뢰 담보안되는 인터넷은 약 아닌 독" 
이문열 "네티즌에 대한 의병운동 일어나야"
주성영의원 "촛불시위는 천민민주주의"

극우 단체의 특수부대 군복과 가스통. 그런데 이 장면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이것은 2004년 노무현 탄핵 정국에도 등장했던 '도구'이다. 그것이 최근 KBS 앞에 또다시 등장했다는 소식이다. 물론 이런 반응은 이미 예견되었던 것들이다. 촛불정국의 장기화에 따른 일종의 부작용인 셈이다.

그러나 촛불과 이들은 확연히 다르다. 시위를 하는 도구가 다르고, 시위 방식에서도 폭력과 비폭력으로 나뉜다. 또 촛불은 진보와 건전 보수, 일반 시민, 학생 등 다중이 한데 모여 그들이 가는 길이나 그 길의 끝을 쉽게 예측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느덧 가스통과 특수부대군복이 상징처럼 되어 버린 일부 극우 단체들의 행보는 그들이 언제쯤 등장할 것인지는 물론이고, 미래의 행동까지도 어느정도 예측 가능하다는 것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극우 단체들의 핵심 주장은 '나라 말아 먹는 촛불을 끄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촛불의 배후를 '친북 좌파 혹은 반미 선동세력'이라고 주장하거나 심하게는 '국가 전복 세력'으로 까지 매도하고 있다. 

이런 그들의 주장은 당연히 유감스러운 것이다. 물론 촛불 정국이 장기화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타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열쇠는 역시 촛불시위대가 아닌 정부가 쥐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런 상황에 대한 이해나 고려가 없다. 막무가내인 셈이다. 물론 이들의 눈에는 오히려 촛불시위가 막무가내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계를 2004년으로 되돌리면, 누가 막무가내인 것인지를 금새 알 수있다.

2004년 '노무현 탄핵 정국'은 구민주당과 한나라당 주연에 극우 단체의 우정 출현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다. 사실 노무현의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좌파나 서울 강남의 부동산 부자들이 반대하고, '국가 안보'를 그토록 강조하는 보수단체들은 극구 찬성해야 할 일이었다.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쯤에서 그들이 행정수도를 반대했던 것이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는 것을 그들의 '친북 좌파' 논리에 입각해 증명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논리 대로라면 2004년 당시의 '친북 좌파'는 오히려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휴전선과 수도 서울은 겨우 4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는 휴전선 인근의 북한군 재래식 무기로도 충분히 일괄 타격이 가능한 거리라고 한다. 이뿐일까. 서울과 수도권에는 전국민의 1/4 이상이 살고 있다. 수도 서울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안보 전략상으로도 상당히 위험한 상태인 것이다.

인정받고 싶다면 가스통부터 내려야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극우파들이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는 박정희 대통령도 행정수도를 이전하려고 계획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실행하기 직전에 피살 당했다. 그 때문에 수도 이전 계획이 무산 되었을 뿐이다.

극우 단체들은 행정수도 이전을 '좌파 노무현'이 추진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전형인 셈이다. 만약 행정수도 이전을 보수정권(박정희)이 그대로 추진했다면 과연 이들이 그것을 반대했을까. 극우단체들은 가스통부터 내려놓고 이 문제를 심각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행태로 볼 때 이들은 5년 뒤 보수정권이 아닌 여타의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분명히 어떤 이유를 들어서든 또다시 가스통을 집어 들 개연성이 높다. 물론 그것의 빌미는 지금의 촛불시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촛불은 상당수의 국민이 '가슴'으로 동의한 측면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때가서 그들이 촛불과 자신들의 상황을 단순 비교 하며 궁색한 논리를 편다면, 그들의 주장이나 시위는 그들 만의 리그에서 펼치는 한 때의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부디 나의 예측이 빗나가 그들이 또다시 가스통을 드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건전한 보수들의 이미지 실추

보수단체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이처럼 무모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보수들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선 중앙 동아 처럼 일부 기회주의 언론들이 이들에 동조하는 듯한 논조를 보이면서 보수에 대한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촛불시위는 좌우나 진보 혹은 보수의 이념을 이미 넘어 서 있다. 이것을 보혁 갈등이나 좌우 갈등으로 몰고 가려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역사적인 손실이다. 물론 그렇게 될 수도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만 우리사회의 건전한 보수들이 침묵하는 사이 어느새 보수의 이미지는 특수부대 군복과 가스통, 그리고 고집스런 노인들이라는 인상을 남겨 부정적인 모습으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건전한 보수진영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침묵하는 다수의 보수들이 커밍아웃할 시점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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