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올라간 제 기사가 편집진에 의해 후미 부분이 잘렸습니다.

덕분에 기사의 뜻이 왜곡되어 전달될 소지가 있어 보여 부득이하게 원본을 공개 합니다.

파견업체를 통해 모 쇼핑몰에 근무했던 A씨의 이야기가 삭제되면서

기사의 마무리가 다소 이상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어쩌면 오마이뉴스 편집진은 '1기사 1팩트 원칙'을 들어 팩트 하나를 빼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기사는 사건 나열식의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닙니다.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쓴 글이죠.

 

어쨌든 A씨의 이야기가 있고 없고에 따라 기사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A씨의 이야기가 있는게 맞을 까요? 없는 게 맞을 까요? 판단은 여러분이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링크 --- 수리업체 직원의 인사가 불편했던 이유


아래는 제가 쓴 기사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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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업체 직원의 90도 인사가 불편했던 이유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로부터 받는 지나친 호의와 친절이 불편해 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친절을 베푸는 이가 비정규직 근로자라면 그런 불편함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 친절함 뒤에 숨어 있는 말못할 고민과 사연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얼마전 기자는 친구로부터 전화한통을 받았다. 통화 내용은 이랬다. 구입한지 일년 쯤 된 이이폰이 말썽이란다. 친구는 "30만원이나 주고 산 비싼 이어폰인데 벌써 몇 번째 고장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에는 수리센터에 방문해서 수리도 맡기고 강력하게 항의도 할 생각"이라고 했다.


시간이 되면 수리센터에 함께 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혹시나 기사 거리라도 있을까 싶어 동행을 하게 되었다. 수리센터에 도착해 접수를 마치고 얼마간 기다리자 고장 수리를 담당하는 직원이 친구를 호명했다.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화가 누구러 지지 않았던 친구는 담당 직원의 친절한 태도에 다소 화가 누그러지는 듯 보였다. 이 직원은 이어폰을 수리하는 동안에도 "고객님 불편하셨죠. 이 제품은 구조상에 문제가 있어서 고장이 잦은 편입니다"라며 연신 친구를 달랬다. 이런 직원의 태도에 잔뜩 화가 나 있던 친구도 점차 화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었다. 수리를 마친 직원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와 친구와 나에게 머리를 숙여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친구와 나는 이 직원의 지나친 친절에 적잖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가 건넨 말은 "고객님 혹시라도 저희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서비스가 만족 스러웠다고 꼭 말해 주세요. 그 전화는 회사를 평가 하는 게 아니라 저를 평가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쯤되자 이 직원의 친절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해 지기 시작했다. 확인 결과 그도 비정규직 근로자였다. 그래서 일까. 그가 친구와 나에게 베푼 친절함 뒤에서 겪고 있을 고충이 무엇일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이른바 비정규직 근로들은 아웃소싱, 파견, 용역 다양한 이름으로 대기업과 중소 기업 등에 '팔려' 나간다. 이들 파견업체들은 자신들이 파견한 근로자들이 벌어들인 임금의 일정부분을 떼어 간다. 이들 업체들이 근로자들로부터 수수로 명목으로 떼어가는 금액은 임금의 10~30%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송곳>(Jtbc 2015년 10-11월 방송)에서는 이런 세태를 실랄하게 비판했다. 부진 노동 상담 소장 구고신(안내상 분)은 드라마에서 "돈은 깃발 든 놈들이 번다"고 쏘아 붙인다. 이는 일은 노동자들이 하고 돈은 파견업체가 벌어가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드라마에서 파견업체들은 깃발을 들고 호루라기를 불며 노동자들을 곳곳에 파견하는 것으로 묘사 된다. 파견 업체들은 노동자들을 이리 저리 옮기는 것뿐인데 그 대가 치고는 꽤 짭짤한 수입을 얻어가는 것이다. 


최근 파견업이 성행하는 이유는 '쉬운 해고와 쉬운 고용'이라는 기업과 파견업체 간의 이해 관계가 서로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파견업체를 통해 유명 쇼핑몰의 콜센터 상담 직원으로 근무하게 된 A씨(여 42)는 최근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쇼핑몰 측으로부터 '본사로 복귀하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파견업체 근로자인 A씨에게 본사 복귀 통보는 사실상 해고나 다름없다. 파견을 전문으로 하는 A씨의 본사인 파견업체에 콜센터 상담업무가 있을리 없다. 본사 복귀를 통보 받은 A씨는 자연스럽게 퇴사 절차를 밟았다. 말이 좋아 퇴사지 사실상 해고인 것이다.  


이처럼 파견 형태로 고용된 근로자들은 매우 손쉽게 해고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고객에게 친절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일부 콜센터와 수리센터 직원 등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겉으로는 밝게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언제 잘릴가를 걱정하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친절함이 고맙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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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입장에서 애써 작성한 기사가 채택되지 않으면 기분이 좋을리 없다.

 

하지만 일희일비하지 않을 생각이다. 진심은 언젠가는 통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편집진의 눈에 들기 위해 기사를 쓸 생각은 없다. 나는 단지 내가 알리고 싶은 이야기나 기사를 오마이뉴스라는 창구를 통해 세상으로 내보낼 생각이다.

 

솔직히 나는 현직에 있을 때도 편집진의 눈치를 보며 기사를 쓴 적이 없다. 기사 출고 문제로 편집진과 마찰이 생기면 두말 않고 사표를 던졌다. 그로인해 경력이 차곡차곡 쌓이지 못하고 누더기가 되더라도 나는 종종 그렇게 했다.

 

물론 편집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기자와 편집장 혹은 편집진의 관계다. 오마이뉴스의 장점은 이런 마찰이 좀처럼 잘 일어나지 않는 다는 점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 편집진은 마음에 안드는 기사를 실시간글로 흘려 보내면 된다. 반면 기사가 비채택된 시민 기자는 기사를 보강해서 다시 쓰거나 블로그와 같은 매체에 글을 올리면 된다. 그뿐이다. 쿨하지 않은가?

 

그러나 기사를 쓰다 보면 의외로 관점이 충돌할 때가 많다. 관점의 충돌은 비단 기자와 편집진 사이에서뿐 아니라 기자와 독자 사이 혹은 매체와 매체 사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의 보도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편집진이든 기자든 관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옳다고 믿을 때가 더 많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기사는 다소간의 불안전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기사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자는 편집진으로부터 좀더 다양한 각도에서 취재 할 것을 요구 받기도 한다. 이런 요구라면 기자는 편집진의 뜻을 수용할 필요와 의무가 있다. 

 

이쯤에서 고백하나 하고 가자. 나는 정의롭고 의로운 기자일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정의로운 기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기사 쓰는 것을 즐기는 기자이기는 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오마이뉴스를 놓지 않고 붙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오마이뉴스에 쓴 몇개의 기사 덕분에 제법 쓸만한 신문사에 스카웃되었던 적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마이뉴스가 지닌 영향력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하지만 기자를 그만둔 이후로 때로는 바빠서, 때로는 의욕이 없어서 글을 쓰지 못했던 적도 있다. 오마이뉴스와의 관계도 어느덧 그렇게 10년이 훌쩍 넘었다. 세월이 오래인 만큼 오마이뉴스와는 알게 모르게 애증 관계도 있다.

 

그럼에도 오마이뉴스는 내게는 늘 친정이 되어 주던 곳이기도 하다. 편집진의 입맛에 맞는 기사가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기사를 나만의 언어로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쓸 수 있었던 공간, 그곳이 바로 오마이뉴스였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는 앞으로도 내게 그런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꼭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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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히 이름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최근 언론계는 기자상을 수상하고도 기쁨을 누리기는커녕 소송에 시달리며 고초를 겪는 기자들이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기자협회보에는 매우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실렸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정부나 권력 기관 등이 언론 자유를 침해할 목적으로 기자에게 소송을 제기할 경우 법원이 별도의 심리 없이 이를 각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기자들이 불필요한 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종의 안전 장치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사의 내용이 법적인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권력 기관들이 기자를 압박할 목적으로 제기하는 소송을 일컬어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한다.

물론 취재원 보호에 관한 법률 하나도 제대로 제정하지 못한 나라에서 법원이 기자를 보호하기 위해 소송(전략적 봉쇄소송)을 임의로 각하하는 문제 까지 언급하는 것은 다소 앞서가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미국 법원의 태도 만큼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실 언론 자유와 관련한 논의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언론계 내부에 있다. 일부 매체들은 선정적인 보도로인해 기레기(기자+쓰레기)로 까지 불리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 이들의 무책임한 보도 태도는 언론자유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여론을 형성하는데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기레기 문제로 시야를 가리기에 앞서 기자들이 처한 현실부터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현재 한국은 취재원 보호에 관한 법률조차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자협회의 윤리 강령에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취재원을 보호한다'고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언론이 취재원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언론은 취재원을 보호함으로서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핵심 정보에 다가 갈 수 있게 된다. 제법 굵직한 특종 기사 뒤에는 대부분 내부고발자와 같은 결정적인 제보자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취재원(내부고발자)들이 익명성을 보장 받지 못해 검경의 수사를 받거나 고소 고발을 당한다면 제보 활동은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취재원으로부터의 제보가 차단된 언론은 공익적인 문제를 취재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말랑 말랑한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언론 환경은 결국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일삼는 기레기를 탄생시키는 토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취재원 보호의 중요성이 새삼 주목 받고 있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5년 4월 새정치 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은 '언론에 취재원 공개를 강제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취재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끝내 통과 되지 못했다.

취재를 위한 기본적인 법률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일까. 언론인들은 갈수록 소송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 되고 있다. 취재에 열정적이고 기자 정신이 투철할 수록 권력의 '묻지마'식 소송에 시달리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기자협회보 김달아 기자가 지난 3월에 작성한 기사( 패소 뻔한데 "고소하겠다", 알아서 조심하라는 권력)는 권력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기자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드물긴 하지만 권력으로부터 소송에 걸려도 나름의 노하우로 잘 이겨 내는 기자도 있다.

기자들 무고죄로 맞대응, 문제는 '시간'

언론 관련 소송에 있어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를 언급하지 않으면 서운할 정도다. 주진우 기자는 자신의 소송 경험담을 책(<주기자의 사법활극>)으로 엮어내 주목 받기도 했다. 권력자들과의 빈번한 법정 다툼으로인해 주진우 기자는 어느새 소송의 달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실제로 주진우 기자는 기사와 팟케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와 관련해서 10여개의 소송을 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또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을 고소한 상대를 무고죄로 맞고소하며 강력하게 대응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가 무고죄로 상대를 압박하며 맞대응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시간상의 문제로 소송 상대를 무고죄로 맞고소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작은 언론사 기자들의 경우 지면 부담이 큰 것은 물론이고, 회사 내부의 잡무까지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전문지 기자는 "기자들은 소송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며 "무고죄로 맞고소 하려면 또다시 시간을 뺐겨야 하는데 빠듯하게 돌아가는 업무 특성상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남발하는 '묻지마 소송'에 기자들은 점점 더 지쳐가고 있다. 얼마전 청와대 발 특종을 터트린 것을 계기로 기자협회로부터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A기자는 "청와대에서 아주 사소한 것까지 시비를 걸어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기자들은 기사와 관련해 소송을 당하면 기사 쓰랴 소송 준비하랴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에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실제로 한번 소송을 경험한 기자는 기사 작성시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를 검토하며 자기 검열에 빠지는 부작용까지 겪는다.

법적으로든 제도적으로든 기자들이 정치 권력으로부터 부당한 소송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재환 기자 fanterm5@한메일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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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자전거 타기, 계단 오르기 등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운동법은 의외로 많습니다.

특히 이중에서도 계단 오르기는 비교적 짧은 운동 시간에도 불구하고 심폐 기능을 향상 시키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전부터는 양손 가득히 짐을 들지 않은 이상 아파트 9층 집 까지 걸어 올라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도 복병이 있었네요. 바로 흡연자들 입니다.

어떤 날은 계단에 오르자 마자 담배 냄새가 나는 통에 계단 오르기를 포기하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합니다.

흡연자들은 아마도 담배 연기가 얼마나 큰 민폐인지를 실감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도 2010년도에 담배를 끊기 전까지는 그랬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담배 냄새가 얼마나 역겨운지 모릅니다.

물론 흡여자들은 당당히 흡연권을 요구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흡연권은 단순히 개인의 욕구 충족이 목적일 뿐입니다. 이에 반해 비흡연자들의 권리는 건강을 지키기 위한 생존권에 가깝습니다. 당연히 개인의 욕구가 국민의 건강권 보다 앞설 수는 없겠지요.

끝으로 흡연자 분들께 충고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담배값으로 따박 따박 세금까지 내면서 욕은 욕대로 먹는 게 억울 하지도 않으신가요? 또 제 몸 망가 뜨리는 일에 한달에 수십만원씩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 경우에는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자각을 하고 난 뒤 미련없이 담배를 끊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전까지는 하루에 담배를 두갑 이상 피우던 골초 였습니다.

어쨌든 흡연자 여러분, 더이상 죄인 처럼 숨어서 담배 피우지 마시고 담배 끊고 저 처럼 비흡연자로 전향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겁니다. 믿거나 말거나.

 

 

-- 이글은 모바일앱 모이(moi)에도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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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과정에서는 유난히 잡음이 많았다. 개표 과정에서 여러가지 의혹들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한겨례 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따르면 일부 선거구에서는 투표함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개표방송이 시작된 곳도 있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사전투표의 결과와 실제 투표 결과가 심하게 차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 투표에서 문재인 후보의 우세가 뚜렷한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투표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몰표를 받았다. 확률상 나오기 어려운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위에 제시한 것은 지극히 일부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김어준의 파이이스를 보면 그보다 훨씬 많은 의혹들이 나온다. 더 궁금하다면 김어준의 파파이스 역누적 미스테리 편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어쨌든 지난 대선 결과는 수많은 의혹을 남긴 채 그렇게 찜찜하게 마무리 됐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난 대선에서 찜찜함을 느꼈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투표감시단을 만들고 투표의 전과정을 감시했다. 그래서 일까. 이번 4.13 총선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제대로된 심판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예상을 한참 빗나간 결과에 충격이 큰 탓인지 언론과 정치학자들은 이번 총선에 대한 뒷북 분석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런 수준의 분석은 마음만 먹으면 아마추어 정치평론가들도 할 수 있다.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평론에 매달릴 시점이 아닌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느낀 것은 딱 하나다. 투표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표부터 개표까지 투표의 전과정이 한점의 의혹도 없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지를 감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은 아직 끝난게 아니다. 또다른 감시 대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총선이 끝나자 마자 검찰에서는 이번 총선과 관련한 수사에 착수 했다. 국민들은 검찰의 수사가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검찰이 공정한 잣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인지를 두눈 부릅 뜨고 감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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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칸이 좁다

삐딱한 시선 2016.04.08 18:22 Posted by 이재환

사표를 유도할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면 투표용지의 칸은 좀 넓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투표하다가 이렇게 긴장해 보긴 처음이다.

 

자칫 잘못하면 선밖에 찍을 뻔했다. 집중력 테스트 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선관위는 투표 용지를 만들고 사전에 모의 투표를 해보지도 않은 걸까? 안했다면 직무유기다.  

 

오마이뉴스에 관련 기사를 올렸다. 물론 위에서 말한 것 처럼 급진적인 비판은 하지 않았다.

 

매체란 것이 원래 그렇다. 아무리 취재 보도가 자유로운 오마이뉴스라고 해도 거기도 언론이다. 나름 편집방침이라는 틀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판을 상당부분 자제하고 부드럽게 기사를 썼다. 아래는 관련 기사다.

 

[사전투표후기]  정당투표 용지, 칸이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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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죽을 권리, 안락사

삐딱한 시선 2015.08.11 13:21 Posted by 이재환

죽음을 가볍게 보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무겁게 보는 것도 문제다.

일각에선 이미 안락사가 시행되고 있는 나라도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안락사에 대한 논의 조차 못하고 있다. 그 저변에는 종교와 윤리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과연 불필요한 연명 치료를 통해 생명을 근근히 유지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일까. 내가 보기엔 그런 의료행위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깍아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침상에 시체처럼 누워 콧줄에 의존해 연명하는 삶이 존엄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의 사회적 분위기는 아직은 락사를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안락사에 대한 논의 조차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안락사가 죽음의 보편적인 형태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불필요한 연명치료에 지친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답게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열망이 싹트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이미 서구 유럽에서 시작이 되었고 미국과 일부 국가로 스며들고 있다.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안락사 문제가 논의 되기 시작할 것이다. 우여 곡절을 거치며 안락사가 법적으로 용인되는 날도 올 것이다. 다만 불필요한 논쟁으로 그 시기를 앞당기느냐 늦추느냐의 문제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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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그 지루함을 끝내고 싶다

삐딱한 시선 2013.08.13 10:36 Posted by 이재환

노파심에 말하지만 내가 환생을 기정 사실로 받아 들인다고 해서 환생 자체를 긍정적으로 볼 것이라고는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솔직히 나는 환생을 멈추고 싶다. 인간 세상이나 생물체로 살아가는 일이 녹록치 않아서만은 아니다. 단지 고요하고 평화로운 삶을 꿈꿀 뿐이다. 솔직히 내가 염세적인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가끔 인간들이 하는 짓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때 마다 속으로 "왜 저러지?,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라는 말을 곱씹곤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석가모니는 수행을 마치며 "나는 더이상 윤회를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나도 수행을 하면 저런 경지에 도달 할 수 있는 걸까. 어쨌든 지구는 내가 선택한 수행처이다. 그럼에도 인구 밀도가 높은 지구에 환생해 사는 일이 썩 행복하진 않다. 


적당한 거리를 두며 가끔은 인간계를 떠나 홀로 있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관련글> 환생 그것은 영혼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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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그것은 영혼의 운명이다

삐딱한 시선 2013.08.08 10:40 Posted by 이재환

누군가는 말했다. "전생이나 윤회는 신앙이나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알고 모름의 문제"라고. 나는 이말에 동의 한다. 


때문에 나는 전생이나 윤회를 사실로 받아 들이고, 좀더 나아가 인간이 윤회를 하는 이유와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최근 환생이나 영혼과 관련된 몇몇 서적들을 탐독하고 있다. 그러던 중 발견한 책이 하나 있는데, 최준식의 <죽음의 미래>이다. 물론 이 책을 칭찬하려고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을 비판하고 싶어서 귀찮음을 무릎쓰고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미리 밝히지만 나는 영혼의 문제를 비과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동의 하지 않는다. 영혼의 문제는 현대 과학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현생 인류의 두뇌와 지적 능력으로 영혼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아마도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영혼의 문제가 과학의 영역이 아닌 만큼 저자 최준식이 책에서 주로 인용하는 것은 일부 유명한 학자들의 연구나 그들의 개인적 경험담이다. 저자가 언급한 몇몇 저명한 학자의 경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영계를 기술하고 있다. 이들이 기술한 영계는 명상으로 도달 할 수 있는 아스트랄계일 것으로 추정된다. 아스트랄계는 명상자의 의지나 생각에 따라 왜곡이 심해 질 수 있다. 저자가 이점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덕분에 마이클 뉴턴의 최면에 의한 전생 퇴행 요법은 지나치게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솔직히 저자는 마이클 뉴턴의 연구가 지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내가 보기에 죽음이나 윤회 혹은 환생과 관련되어 마이클 뉴턴(영혼들의 여행 저자) 만큼 압도적인 업적을 남긴 인물은 없다. 그 이유는 영혼의 특징과 실체를 그만큼 제대로 조사하고 파악한 인물도 없기 때문이다. 


마이클 뉴턴은 최면술의 퇴행요법을 이용해 피술자들이 경험한 사후 영혼의 세계를 객관적으로 잘 기술하고 있다. 물론 최면요법도 시술자의 의지에 따라 왜곡될 가능성은 있다. 최면 시술자가 피술자에게 엉뚱한 암시를 주거나 시술자의 능력이 부족할 경우 피술자가 전생이 아닌 전혀 엉뚱한 상황을 경험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생 최면은 최면수사에서 출발 


하지만 전생 최면 요법은 목격자에게 사건을 기억하도록 실시한 최면 수사 과정에서 탄생했다. 비록 최면요법이 100% 신뢰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수사 기법의 하나로 동원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최면요법이 죽음과 영혼 그리고 환생을 연구하는데 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인 셈이다. 


최면요법을 사용해 전생이나 영혼을 연구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마이클 뉴턴이다. 뉴턴의 업정 중 단연 압권은 영혼의 동시성을 발견한 것이다. <죽음의 미래> 저자 최준식은 영혼의 동시성은 자기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어서 그냥 넘어간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솔직히 나로서는 죽음의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했다는 그가 이 정도의 개념도 이해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여기서 잠깐 영혼과 육체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비판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영혼의 동시성 즉 영혼의 분할 능력은 우리의 영혼이 두세게 이상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는 컴퓨터 본체와 소프트웨어의 관계와도 같다. 


컴퓨터는 전원을 넣고 부팅을 하면 켜진다. 하지만 윈도우나 워드프로세서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단순히 소리내며 돌아가는 기계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각종 소프트웨어가 깔리면 컴퓨터는 엄청난 기능을 수행하는 스마트한 장치로 변한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육체가 하드웨어라면 영혼은 육체를  쓸모있게 만드는 소프트웨어에 해당 한다. 쉽게 말해 하드웨어인 육체에 소프트웨어인 영혼이 깔리면 비로서 하나의 생명이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쉽게 이해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이해 못했다면 이 글을 읽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재미난 글을 찾아 읽을 것을  정중히 권한다. 


영혼의 일부를 영계에 남겨 두고 온다 


마이클 뉴턴의 책 <영혼들의 여행>에 따르면 영혼들은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지구로 올때 영혼의 일부를 영계에 남겨 두고 온다고 한다. 혹자는 이것을 복사의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복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계에 남겨진 영혼의 일부는 그곳에 남아 개별적인 임무도 수행하고 심지어 수행이나 공부도 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일부 임사체험자들은 죽은 직후 영계로 갔을 때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마중나왔다고 주장 한다. 


일반적으로 환생은 빠르면 10년 이내 혹은 평균 30-50년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친지들은 임사자를 마중 나올 수가 없다. 그들이 이미 환생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임사자를 마중을 나올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영혼의 일부가 영계에 남아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뉴턴의 연구에 따르면 영혼은 두개 이상의 시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영혼에는 신과 유사한 '신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혹시 이준기 주연의 <아랑 사또전>에서 염라대왕이 여러 살람을 동시에 심판하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물론 이 장면을 몰라도 상관은 없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염라대왕은 수많은 사람의 생을 동시에 살피고 그들 모두에게 즉석에서 심판을 내린다. 신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 다는 통설을 드라마를 통해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우리의 영혼은 아직 미숙해서 영혼을 나누는 분할 방식을 통해서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영혼의 이런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면 죽음이나 환생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낼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영혼의 동시성을 밝힌 마이클 뉴턴의 연구가 가치가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또한 영혼을 단순한 실체로서가 아니라 신성을 지닌 존재로 이해 하면 죽음이나 환생이 지닌 궁극적인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 그만큼 수월해 질 수 있다. 영혼이 지속적으로 환생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는 마이클 뉴턴의 <영혼들의 여행>이나 <영혼들의 운명 1,2> 등을 읽고 각자 알아서 판단해 보길 바란다. 


관찰력 부족이 느껴진다


<죽음의 미래> 저자인 최준식이 영혼의 분할 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심 스럽게 지적하고 싶다. 


현재 한국에는 죽음이나 환생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흔치 않고 연구 실적 또한 미미한 편이다. 그런 와중에 그나마 최준식 같은 일부 학자만이 이 분야에서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고분분투하며 업적을 쌓아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준식의 글을 비판하는 것은 그의 글이 분석력은 탁월할지 모르지겠지만 관찰력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최준식의 <죽음의 미래>의 한대목을 살펴 보기로 하자.


"늙은 동물들은 아무리 늙어도 인간처럼 그렇게 주름지고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 늙은 동물들은 기력만 쇠할 뿐 몸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얼굴의 주름처럼 살갗에 생기는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노안이나 치아가 빠지는 등 늙으면 젊을 때와는 생판 다른 사람이 된다. 특히 여성의 경우, 그 아름답던 처녀 때의 자태는 노인이 되면 어느 곳에도 찾아볼 길이 없다." 


솔직히 이 대목을 보고 저자의 관찰력에 적잖이 실망을 했다. 저자는 나름대로 동물들을 관찰하고 이런 글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런 내용을 글로 쓰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솔직히 저자가 동물학자가 아니니 망정이니 동물학자가 이런 글을 썼다면 망신을 당할 수도 있는 내용이다. 


인간과 가장 밀접한 동물인 개를 예로 들더라도 저자의 글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한마리의 개를 10년 이상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에게도 빛나는 미모의 청춘기와 중년기나 노년기가 있다는 것쯤은 안다. 


개도 12년 이상 살면 젊은 시절의 미모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몸도 야위고 털도 빠진다. 게다가 빠진 털 사이로 보이는 속살은 탄력을 잃고 축 늘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것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물론 개를 안키워 봐서 몰랐다고 말한다면 나로서도 할말은 없다. 


하지만 성장하고 죽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모든 만물이 늙어간다는 것은 피고 지는 꽃이나 나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동식물은 비록 그것이 인간의 눈으로는 느끼지 못할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그들 나름대로 서서히 늙어 간다. 


만약 인간의 눈에 특정 동식물이 늙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이유는 딱 두가지 때문이다. 해당 동식물이 수명이 짧아 늙기도 전에 일찍 죽는 탓이거나 인간의 눈으로는 그 동식물이 늙어 가는 것을 쉽게 알아 차릴 수 없어서 일 것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인간의 착시가 불러온 오해일 수 있다. 


심지어 이런 착시 현상은 같은 인간종 사이에서도 흔하게 일어 난다. 비교적 최근의 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양인들이 볼 때 동양 여성이 초절정 동안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들의 눈에 동양인 여자는 거의 늙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 20-50대까지의 동양 여자들이 모두 같은 연령대인 20대로 보이는 경우가 허다 하다고 한다. 하지만 동양 남성들에겐 동양 여성들의 나이대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동양인들이 서양인이나 흑인들을 볼때 그들의 얼굴이 모두  비슷 비슷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그들이 20대인지 40대인지 조차 가늠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을 많이 접해 보지 못한 탓이 크다. 만약 오랜 세월 동안 그들과 어울려서 살면서 그들을 자세히 관찰했다면 그들의 얼굴형이나 나이대를 구분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동식물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가 관심을 갖고 관찰하지 않아서 그들의 생로병사를 제대로 모른다고 보는 것이 아마도 더 타당할 것이다. 


내가 굳이 본문을 인용하면서 까지 저자 최준식을 비판하는 이유는 저자 최준식의 영혼이나 죽음에 대한 연구가 관찰력 부족으로 방향을 잃고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드러난 현상조차 제대로 살피지 않고 무시한다면 누구나 오류에 빠질 수 있다영혼 분할은 이미 드러난 현상이다. 그것을 빼놓고 영계를 이해 한다는 것은 열쇠를 쓰지 않고 악력만으로 잠긴문을 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죽음과 영혼을 연구하려면 편견부터 버려야 


내가 마이클 뉴턴의 연구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죽음과 영혼 그리고 환생에 대한 문제를 방대한 사례를 비교적 정확히 관찰하고 그것을 편견없이 풀어냈기 때문이다. 마치 특종 기자들이 다양한 경로로 취재를 하고 자료를 모아 그것을 바탕으로 통찰력 있는 기사를 쓰듯이 그렇게 말이다. 


기자들의 경우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핵심이나 진실이 무엇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경우에 봉착하기도 한다. 이때 어떤 기자는 무식하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사람을 만난다. 그렇게 방대한 자료를 모으면서 앞뒤 안가리고 무조건 취재만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모은 자료와 취재한 내용이 믹스가 되면서 진실의 윤곽이 잡히고 사건의 핵심과 본질이 보일 때가 있다. 실제로 이렇게 작성된 기사들이 특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마이클 뉴턴의 연구도 바로 이런 경우이다. (물론 그의 연구는 아직 완성된 것도 아니고, 완벽한 것도 아니다.)


뉴턴은 환생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과 치료 방법의 하나로 최면 요법을 시행하던 중에 환생과 영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관심을 배경삼아 그는 수많은 피술자들에게 최면으로 전생퇴행 요법을 시행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영혼의 동시성이란 '특종'도 낚아냈다. 


<죽음의 미래>의 저자인 최준식씨도 지금 당장 특정 개념을 이해 못한다고 해서 그런 개념들을 무조건 무시하고 버리지 말길 바란다. 언젠가는 그것이 당신만의 특종으로 부활할 때가 올지 혹시 또 누가 알겠나?



참고> 신성을 이해 하고 싶다면 데이비드 호킨스의 <나의 눈>, 성경의 창세기 신이 음성으로 천지 창조하는 부분을 보면 도움이 된다. 이외에 작은 신(일부 영혼들의 일)은 무속이나 귀신현상을 참조해 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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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하철 5호선 개롱역의 에스컬레이터는 고장이 나서 작동이 안된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개롱역은 요즘은 화장실까지 수리중이다. 자기들 말로는 화장실을 업그레이드 중이란다. 이것까지는 그런대로 참아 줄 수 있다. 지하철 화장실은 환기가 잘 안되는 건지, 아니면 이용자가 많아서 그런 건지 냄새가 심해서 어지간히 급하지 않으면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종종 이런 소소한 불편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따로 계단도 없는 출구에 에스컬레이터를 떡하니 설치하고 그것이 고장 났다고 다른 출구로 돌아가라고 배짱을 부리는 것은 좀 짜증이 난다. 애초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할때 일반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모두를 공존 시켰다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운동삼아 계단으로 다니거나 급할때 사람들이 죽 늘어선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에 대한 고려없이 요즘은 지하철 입구를 통째로 막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롱역 에스컬레이터처럼 고장이 나면 아예 다른 출구로 다녀야 하는 불편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의 고장의 경우 사정이 약간 다르다.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를 계단삼아 걸어서 통과할 수 있다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가 통제되고 다른 출구를 이용해야 할때는 인상이 구겨질 수 밖에 없다. 


운동삼아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다른 출구의 계단을 택한다고 해도 버젓히 있는 출구를 놔두고 다른 출구로 다녀야 하는 것은 여러 모로 불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운동의 수준을 넘어 일종의 노동(?)이 되기도 한다. 


지하철 공사는 에스컬레이터 하나를 설치하더라도 생각이란 것을 좀 하고 설치했으면 좋겠다. 일반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공존하는 형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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