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내륙고속도로 댓글에 대한 2차 답변이다.

서부내륙고속도로 주변에 땅 사놓고 비싼 값에 팔리기만을 기다리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들의 댓글도 꽤 보인다. 그들의 한심한 논리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는 국가 적폐만이 아니라 국민 자체의 적폐도 만만치 않게 쌓여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마이뉴스 이재환 기자는 서부내륙고속도로를 반대하는 의견, 즉 소수 의견만 쓴다?

- 맞다. 적어도 서부내륙고속도로 관련 기사에서는 그렇다. 나는 피해 주민의 입장에서 기사를 쓰고 있다. 기업이나 국가 입장에서 기사 쓰는 구닥다리 신문에 익숙해서 내 논조가 낯선 모양인데, 언론의 본질은 시민이고, 시민의 입장에서 기사를 쓰는 것이 언론의 의무이다.

 고속도로 건설 같은 거대한 토목 공사에 있어서 만큼은 피해자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 봐야 한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내 판단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 역사적 도덕적 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민자고속도로가 문제 인가?

- 나는 민자고속도로가 문제 인지 아닌지 따위를 따지지 않는다. 민자 여부를 떠나 고속도로는 이미 충분하다. 실제로 지방에는 이미 4차선 이상의 고속도로급 국도가 널려 있다. 물론 통행량은 거의 없다. 유지도 안되는 텅빈 국도 옆에 고속도로 뚫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예산 낭비가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이걸 보고도 고속도로 찬성하라고? 서부내륙고속도로 옆에 땅이라도 사놓은 인간이 아니라면 이 도로는 알면 알수록 건설을 찬성할 수가 없는 도로이다.

서부내륙고속도로 반대에 시민단체가 끼여있다?

- 최근 들어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이 회의 주재나 장소 정도를 섭외해 주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의 역할은 거의 없다. 실질적인 로드맵이나 대응 전략은 주민들이 직접 짠다. 이건 취재 중인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고 이분들이 시골 주민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서부내륙고속도로 노선의 피해주민들 중에는 대한한공 기획조정실 실무자 출신, 투자 전문가, 교사, 지역의 유지, 학생운동가 출신의 농민, 장교 출신의 사업가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진 분들도 많다.

서해안 복선 전철은 왜 반대 안하냐고?

- 나는 기본적으로 서해안 복선 전철을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전철 노선에는 민원이 없다. 민가를 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민원도 없는 전철노선을 반대할 명분은 없다. 당신이 반대에 나선다면 기사를 써줄 용의는 있다. 피켓이라도 들고 1인 시위에 나서게 된다면 내게 연락을 주시기 바란다.

 

서부내륙고속도로와 관련된 오해와 억측, 그리고 질문들에 대한 답이다.

 

서부 내륙고속도로 민원이 일부 민원이다?

충남 예산군, 홍성군, 청양군, 심지어 경기도 평택까지. 서부내륙고속도로 노선 곳곳에서 민원이 나오고 있다. 이쯤되면 전체 민원으로 봐야 한다.

 

예산에는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이 많다?

고속도로 건설문제는 찬성하는 주민이 아니라 피해 당사자인 반대 주민들의 의견을 우선 듣고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 집 앞에 고속도로가 나고 피해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 않는다면, 그래도 찬성할 수 있을까? 


서부내륙고속도로를 협의로 풀어가야 한다?

참 한가로운 주장이다.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피해지역 주민들은 4년 이상 국토부에 협상을 요구했다. 주민들은 노선 폐지를 주장하기 전에 이미 수차례 대안노선까지 제시하며 주민피해를 최소화 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그때 마다 상대민원을 거론하며 묵살한 것이 바로 그 잘나신 국토부다.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이 전라도 발전을 막고 있다고?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 문제를 전라도와 충청도의 지역 감정을 조장해 풀고 싶은 세력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전라도 익산 주민들이 남의 터전을 해치면서까지 고속도로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여론을 조작하는 세력이 있을 뿐이라고 보고 있다. 아이피 추적하면 답은 나온다. 


고속도로가 건설되어야 지역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2000년 이후 건설된 고속도로 주변에 발전이 된 곳이 있으면 알려 주길 바란다.  그런 곳은 없다. 국가의 모든 역량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서 지역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지, 고속도로가 부족하고, 없어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마이뉴스>에 올라간 제 기사가 편집진에 의해 후미 부분이 잘렸습니다.

덕분에 기사의 뜻이 왜곡되어 전달될 소지가 있어 보여 부득이하게 원본을 공개 합니다.

파견업체를 통해 모 쇼핑몰에 근무했던 A씨의 이야기가 삭제되면서

기사의 마무리가 다소 이상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어쩌면 오마이뉴스 편집진은 '1기사 1팩트 원칙'을 들어 팩트 하나를 빼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기사는 사건 나열식의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닙니다.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쓴 글이죠.

 

어쨌든 A씨의 이야기가 있고 없고에 따라 기사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A씨의 이야기가 있는게 맞을 까요? 없는 게 맞을 까요? 판단은 여러분이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링크 --- 수리업체 직원의 인사가 불편했던 이유


아래는 제가 쓴 기사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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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업체 직원의 90도 인사가 불편했던 이유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로부터 받는 지나친 호의와 친절이 불편해 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친절을 베푸는 이가 비정규직 근로자라면 그런 불편함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 친절함 뒤에 숨어 있는 말못할 고민과 사연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얼마전 기자는 친구로부터 전화한통을 받았다. 통화 내용은 이랬다. 구입한지 일년 쯤 된 이이폰이 말썽이란다. 친구는 "30만원이나 주고 산 비싼 이어폰인데 벌써 몇 번째 고장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에는 수리센터에 방문해서 수리도 맡기고 강력하게 항의도 할 생각"이라고 했다.


시간이 되면 수리센터에 함께 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혹시나 기사 거리라도 있을까 싶어 동행을 하게 되었다. 수리센터에 도착해 접수를 마치고 얼마간 기다리자 고장 수리를 담당하는 직원이 친구를 호명했다.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화가 누구러 지지 않았던 친구는 담당 직원의 친절한 태도에 다소 화가 누그러지는 듯 보였다. 이 직원은 이어폰을 수리하는 동안에도 "고객님 불편하셨죠. 이 제품은 구조상에 문제가 있어서 고장이 잦은 편입니다"라며 연신 친구를 달랬다. 이런 직원의 태도에 잔뜩 화가 나 있던 친구도 점차 화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었다. 수리를 마친 직원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와 친구와 나에게 머리를 숙여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친구와 나는 이 직원의 지나친 친절에 적잖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가 건넨 말은 "고객님 혹시라도 저희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서비스가 만족 스러웠다고 꼭 말해 주세요. 그 전화는 회사를 평가 하는 게 아니라 저를 평가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쯤되자 이 직원의 친절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해 지기 시작했다. 확인 결과 그도 비정규직 근로자였다. 그래서 일까. 그가 친구와 나에게 베푼 친절함 뒤에서 겪고 있을 고충이 무엇일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이른바 비정규직 근로들은 아웃소싱, 파견, 용역 다양한 이름으로 대기업과 중소 기업 등에 '팔려' 나간다. 이들 파견업체들은 자신들이 파견한 근로자들이 벌어들인 임금의 일정부분을 떼어 간다. 이들 업체들이 근로자들로부터 수수로 명목으로 떼어가는 금액은 임금의 10~30%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송곳>(Jtbc 2015년 10-11월 방송)에서는 이런 세태를 실랄하게 비판했다. 부진 노동 상담 소장 구고신(안내상 분)은 드라마에서 "돈은 깃발 든 놈들이 번다"고 쏘아 붙인다. 이는 일은 노동자들이 하고 돈은 파견업체가 벌어가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드라마에서 파견업체들은 깃발을 들고 호루라기를 불며 노동자들을 곳곳에 파견하는 것으로 묘사 된다. 파견 업체들은 노동자들을 이리 저리 옮기는 것뿐인데 그 대가 치고는 꽤 짭짤한 수입을 얻어가는 것이다. 


최근 파견업이 성행하는 이유는 '쉬운 해고와 쉬운 고용'이라는 기업과 파견업체 간의 이해 관계가 서로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파견업체를 통해 유명 쇼핑몰의 콜센터 상담 직원으로 근무하게 된 A씨(여 42)는 최근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쇼핑몰 측으로부터 '본사로 복귀하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파견업체 근로자인 A씨에게 본사 복귀 통보는 사실상 해고나 다름없다. 파견을 전문으로 하는 A씨의 본사인 파견업체에 콜센터 상담업무가 있을리 없다. 본사 복귀를 통보 받은 A씨는 자연스럽게 퇴사 절차를 밟았다. 말이 좋아 퇴사지 사실상 해고인 것이다.  


이처럼 파견 형태로 고용된 근로자들은 매우 손쉽게 해고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고객에게 친절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일부 콜센터와 수리센터 직원 등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겉으로는 밝게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언제 잘릴가를 걱정하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친절함이 고맙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글쓴이의 입장에서 애써 작성한 기사가 채택되지 않으면 기분이 좋을리 없다.

 

하지만 일희일비하지 않을 생각이다. 진심은 언젠가는 통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편집진의 눈에 들기 위해 기사를 쓸 생각은 없다. 나는 단지 내가 알리고 싶은 이야기나 기사를 오마이뉴스라는 창구를 통해 세상으로 내보낼 생각이다.

 

솔직히 나는 현직에 있을 때도 편집진의 눈치를 보며 기사를 쓴 적이 없다. 기사 출고 문제로 편집진과 마찰이 생기면 두말 않고 사표를 던졌다. 그로인해 경력이 차곡차곡 쌓이지 못하고 누더기가 되더라도 나는 종종 그렇게 했다.

 

물론 편집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기자와 편집장 혹은 편집진의 관계다. 오마이뉴스의 장점은 이런 마찰이 좀처럼 잘 일어나지 않는 다는 점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 편집진은 마음에 안드는 기사를 실시간글로 흘려 보내면 된다. 반면 기사가 비채택된 시민 기자는 기사를 보강해서 다시 쓰거나 블로그와 같은 매체에 글을 올리면 된다. 그뿐이다. 쿨하지 않은가?

 

그러나 기사를 쓰다 보면 의외로 관점이 충돌할 때가 많다. 관점의 충돌은 비단 기자와 편집진 사이에서뿐 아니라 기자와 독자 사이 혹은 매체와 매체 사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의 보도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편집진이든 기자든 관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옳다고 믿을 때가 더 많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기사는 다소간의 불안전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기사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자는 편집진으로부터 좀더 다양한 각도에서 취재 할 것을 요구 받기도 한다. 이런 요구라면 기자는 편집진의 뜻을 수용할 필요와 의무가 있다. 

 

이쯤에서 고백하나 하고 가자. 나는 정의롭고 의로운 기자일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정의로운 기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기사 쓰는 것을 즐기는 기자이기는 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오마이뉴스를 놓지 않고 붙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오마이뉴스에 쓴 몇개의 기사 덕분에 제법 쓸만한 신문사에 스카웃되었던 적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마이뉴스가 지닌 영향력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하지만 기자를 그만둔 이후로 때로는 바빠서, 때로는 의욕이 없어서 글을 쓰지 못했던 적도 있다. 오마이뉴스와의 관계도 어느덧 그렇게 10년이 훌쩍 넘었다. 세월이 오래인 만큼 오마이뉴스와는 알게 모르게 애증 관계도 있다.

 

그럼에도 오마이뉴스는 내게는 늘 친정이 되어 주던 곳이기도 하다. 편집진의 입맛에 맞는 기사가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기사를 나만의 언어로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쓸 수 있었던 공간, 그곳이 바로 오마이뉴스였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는 앞으로도 내게 그런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꼭 그래야 한다.

 

 

 

일일히 이름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최근 언론계는 기자상을 수상하고도 기쁨을 누리기는커녕 소송에 시달리며 고초를 겪는 기자들이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기자협회보에는 매우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실렸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정부나 권력 기관 등이 언론 자유를 침해할 목적으로 기자에게 소송을 제기할 경우 법원이 별도의 심리 없이 이를 각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기자들이 불필요한 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종의 안전 장치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사의 내용이 법적인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권력 기관들이 기자를 압박할 목적으로 제기하는 소송을 일컬어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한다.

물론 취재원 보호에 관한 법률 하나도 제대로 제정하지 못한 나라에서 법원이 기자를 보호하기 위해 소송(전략적 봉쇄소송)을 임의로 각하하는 문제 까지 언급하는 것은 다소 앞서가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미국 법원의 태도 만큼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실 언론 자유와 관련한 논의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언론계 내부에 있다. 일부 매체들은 선정적인 보도로인해 기레기(기자+쓰레기)로 까지 불리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 이들의 무책임한 보도 태도는 언론자유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여론을 형성하는데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기레기 문제로 시야를 가리기에 앞서 기자들이 처한 현실부터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현재 한국은 취재원 보호에 관한 법률조차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자협회의 윤리 강령에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취재원을 보호한다'고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언론이 취재원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언론은 취재원을 보호함으로서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핵심 정보에 다가 갈 수 있게 된다. 제법 굵직한 특종 기사 뒤에는 대부분 내부고발자와 같은 결정적인 제보자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취재원(내부고발자)들이 익명성을 보장 받지 못해 검경의 수사를 받거나 고소 고발을 당한다면 제보 활동은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취재원으로부터의 제보가 차단된 언론은 공익적인 문제를 취재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말랑 말랑한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언론 환경은 결국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일삼는 기레기를 탄생시키는 토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취재원 보호의 중요성이 새삼 주목 받고 있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5년 4월 새정치 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은 '언론에 취재원 공개를 강제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취재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끝내 통과 되지 못했다.

취재를 위한 기본적인 법률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일까. 언론인들은 갈수록 소송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 되고 있다. 취재에 열정적이고 기자 정신이 투철할 수록 권력의 '묻지마'식 소송에 시달리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기자협회보 김달아 기자가 지난 3월에 작성한 기사( 패소 뻔한데 "고소하겠다", 알아서 조심하라는 권력)는 권력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기자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드물긴 하지만 권력으로부터 소송에 걸려도 나름의 노하우로 잘 이겨 내는 기자도 있다.

기자들 무고죄로 맞대응, 문제는 '시간'

언론 관련 소송에 있어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를 언급하지 않으면 서운할 정도다. 주진우 기자는 자신의 소송 경험담을 책(<주기자의 사법활극>)으로 엮어내 주목 받기도 했다. 권력자들과의 빈번한 법정 다툼으로인해 주진우 기자는 어느새 소송의 달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실제로 주진우 기자는 기사와 팟케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와 관련해서 10여개의 소송을 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또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을 고소한 상대를 무고죄로 맞고소하며 강력하게 대응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가 무고죄로 상대를 압박하며 맞대응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시간상의 문제로 소송 상대를 무고죄로 맞고소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작은 언론사 기자들의 경우 지면 부담이 큰 것은 물론이고, 회사 내부의 잡무까지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전문지 기자는 "기자들은 소송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며 "무고죄로 맞고소 하려면 또다시 시간을 뺐겨야 하는데 빠듯하게 돌아가는 업무 특성상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남발하는 '묻지마 소송'에 기자들은 점점 더 지쳐가고 있다. 얼마전 청와대 발 특종을 터트린 것을 계기로 기자협회로부터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A기자는 "청와대에서 아주 사소한 것까지 시비를 걸어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기자들은 기사와 관련해 소송을 당하면 기사 쓰랴 소송 준비하랴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에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실제로 한번 소송을 경험한 기자는 기사 작성시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를 검토하며 자기 검열에 빠지는 부작용까지 겪는다.

법적으로든 제도적으로든 기자들이 정치 권력으로부터 부당한 소송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재환 기자 fanterm5@한메일 넷

 


걷기, 자전거 타기, 계단 오르기 등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운동법은 의외로 많습니다.

특히 이중에서도 계단 오르기는 비교적 짧은 운동 시간에도 불구하고 심폐 기능을 향상 시키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전부터는 양손 가득히 짐을 들지 않은 이상 아파트 9층 집 까지 걸어 올라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도 복병이 있었네요. 바로 흡연자들 입니다.

어떤 날은 계단에 오르자 마자 담배 냄새가 나는 통에 계단 오르기를 포기하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합니다.

흡연자들은 아마도 담배 연기가 얼마나 큰 민폐인지를 실감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도 2010년도에 담배를 끊기 전까지는 그랬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담배 냄새가 얼마나 역겨운지 모릅니다.

물론 흡여자들은 당당히 흡연권을 요구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흡연권은 단순히 개인의 욕구 충족이 목적일 뿐입니다. 이에 반해 비흡연자들의 권리는 건강을 지키기 위한 생존권에 가깝습니다. 당연히 개인의 욕구가 국민의 건강권 보다 앞설 수는 없겠지요.

끝으로 흡연자 분들께 충고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담배값으로 따박 따박 세금까지 내면서 욕은 욕대로 먹는 게 억울 하지도 않으신가요? 또 제 몸 망가 뜨리는 일에 한달에 수십만원씩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 경우에는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자각을 하고 난 뒤 미련없이 담배를 끊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전까지는 하루에 담배를 두갑 이상 피우던 골초 였습니다.

어쨌든 흡연자 여러분, 더이상 죄인 처럼 숨어서 담배 피우지 마시고 담배 끊고 저 처럼 비흡연자로 전향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겁니다. 믿거나 말거나.

 

 

-- 이글은 모바일앱 모이(moi)에도 등록되어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는 유난히 잡음이 많았다. 개표 과정에서 여러가지 의혹들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한겨례 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따르면 일부 선거구에서는 투표함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개표방송이 시작된 곳도 있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사전투표의 결과와 실제 투표 결과가 심하게 차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 투표에서 문재인 후보의 우세가 뚜렷한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투표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몰표를 받았다. 확률상 나오기 어려운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위에 제시한 것은 지극히 일부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김어준의 파이이스를 보면 그보다 훨씬 많은 의혹들이 나온다. 더 궁금하다면 김어준의 파파이스 역누적 미스테리 편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어쨌든 지난 대선 결과는 수많은 의혹을 남긴 채 그렇게 찜찜하게 마무리 됐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난 대선에서 찜찜함을 느꼈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투표감시단을 만들고 투표의 전과정을 감시했다. 그래서 일까. 이번 4.13 총선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제대로된 심판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예상을 한참 빗나간 결과에 충격이 큰 탓인지 언론과 정치학자들은 이번 총선에 대한 뒷북 분석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런 수준의 분석은 마음만 먹으면 아마추어 정치평론가들도 할 수 있다.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평론에 매달릴 시점이 아닌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느낀 것은 딱 하나다. 투표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표부터 개표까지 투표의 전과정이 한점의 의혹도 없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지를 감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은 아직 끝난게 아니다. 또다른 감시 대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총선이 끝나자 마자 검찰에서는 이번 총선과 관련한 수사에 착수 했다. 국민들은 검찰의 수사가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검찰이 공정한 잣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인지를 두눈 부릅 뜨고 감시할 필요가 있다.

투표용지 칸이 좁다

삐딱한 시선 2016.04.08 18:22 Posted by 이재환

사표를 유도할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면 투표용지의 칸은 좀 넓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투표하다가 이렇게 긴장해 보긴 처음이다.

 

자칫 잘못하면 선밖에 찍을 뻔했다. 집중력 테스트 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선관위는 투표 용지를 만들고 사전에 모의 투표를 해보지도 않은 걸까? 안했다면 직무유기다.  

 

오마이뉴스에 관련 기사를 올렸다. 물론 위에서 말한 것 처럼 급진적인 비판은 하지 않았다.

 

매체란 것이 원래 그렇다. 아무리 취재 보도가 자유로운 오마이뉴스라고 해도 거기도 언론이다. 나름 편집방침이라는 틀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판을 상당부분 자제하고 부드럽게 기사를 썼다. 아래는 관련 기사다.

 

[사전투표후기]  정당투표 용지, 칸이 좁다

인간답게 죽을 권리, 안락사

삐딱한 시선 2015.08.11 13:21 Posted by 이재환

죽음을 가볍게 보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무겁게 보는 것도 문제다.

일각에선 이미 안락사가 시행되고 있는 나라도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안락사에 대한 논의 조차 못하고 있다. 그 저변에는 종교와 윤리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과연 불필요한 연명 치료를 통해 생명을 근근히 유지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일까. 내가 보기엔 그런 의료행위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깍아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침상에 시체처럼 누워 콧줄에 의존해 연명하는 삶이 존엄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의 사회적 분위기는 아직은 락사를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안락사에 대한 논의 조차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안락사가 죽음의 보편적인 형태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불필요한 연명치료에 지친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답게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열망이 싹트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이미 서구 유럽에서 시작이 되었고 미국과 일부 국가로 스며들고 있다.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안락사 문제가 논의 되기 시작할 것이다. 우여 곡절을 거치며 안락사가 법적으로 용인되는 날도 올 것이다. 다만 불필요한 논쟁으로 그 시기를 앞당기느냐 늦추느냐의 문제만 남았을 뿐이다.

환생 그 지루함을 끝내고 싶다

삐딱한 시선 2013.08.13 10:36 Posted by 이재환

노파심에 말하지만 내가 환생을 기정 사실로 받아 들인다고 해서 환생 자체를 긍정적으로 볼 것이라고는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솔직히 나는 환생을 멈추고 싶다. 인간 세상이나 생물체로 살아가는 일이 녹록치 않아서만은 아니다. 단지 고요하고 평화로운 삶을 꿈꿀 뿐이다. 솔직히 내가 염세적인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가끔 인간들이 하는 짓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때 마다 속으로 "왜 저러지?,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라는 말을 곱씹곤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석가모니는 수행을 마치며 "나는 더이상 윤회를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나도 수행을 하면 저런 경지에 도달 할 수 있는 걸까. 어쨌든 지구는 내가 선택한 수행처이다. 그럼에도 인구 밀도가 높은 지구에 환생해 사는 일이 썩 행복하진 않다. 


적당한 거리를 두며 가끔은 인간계를 떠나 홀로 있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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