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그 지루함을 끝내고 싶다

삐딱한 시선 2013.08.13 10:36 Posted by 이재환

노파심에 말하지만 내가 환생을 기정 사실로 받아 들인다고 해서 환생 자체를 긍정적으로 볼 것이라고는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솔직히 나는 환생을 멈추고 싶다. 인간 세상이나 생물체로 살아가는 일이 녹록치 않아서만은 아니다. 단지 고요하고 평화로운 삶을 꿈꿀 뿐이다. 솔직히 내가 염세적인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가끔 인간들이 하는 짓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때 마다 속으로 "왜 저러지?,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라는 말을 곱씹곤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석가모니는 수행을 마치며 "나는 더이상 윤회를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나도 수행을 하면 저런 경지에 도달 할 수 있는 걸까. 어쨌든 지구는 내가 선택한 수행처이다. 그럼에도 인구 밀도가 높은 지구에 환생해 사는 일이 썩 행복하진 않다. 


적당한 거리를 두며 가끔은 인간계를 떠나 홀로 있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관련글> 환생 그것은 영혼의 운명이다 

환생 그것은 영혼의 운명이다

삐딱한 시선 2013.08.08 10:40 Posted by 이재환

누군가는 말했다. "전생이나 윤회는 신앙이나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알고 모름의 문제"라고. 나는 이말에 동의 한다. 


때문에 나는 전생이나 윤회를 사실로 받아 들이고, 좀더 나아가 인간이 윤회를 하는 이유와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최근 환생이나 영혼과 관련된 몇몇 서적들을 탐독하고 있다. 그러던 중 발견한 책이 하나 있는데, 최준식의 <죽음의 미래>이다. 물론 이 책을 칭찬하려고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을 비판하고 싶어서 귀찮음을 무릎쓰고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미리 밝히지만 나는 영혼의 문제를 비과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동의 하지 않는다. 영혼의 문제는 현대 과학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현생 인류의 두뇌와 지적 능력으로 영혼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아마도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영혼의 문제가 과학의 영역이 아닌 만큼 저자 최준식이 책에서 주로 인용하는 것은 일부 유명한 학자들의 연구나 그들의 개인적 경험담이다. 저자가 언급한 몇몇 저명한 학자의 경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영계를 기술하고 있다. 이들이 기술한 영계는 명상으로 도달 할 수 있는 아스트랄계일 것으로 추정된다. 아스트랄계는 명상자의 의지나 생각에 따라 왜곡이 심해 질 수 있다. 저자가 이점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덕분에 마이클 뉴턴의 최면에 의한 전생 퇴행 요법은 지나치게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솔직히 저자는 마이클 뉴턴의 연구가 지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내가 보기에 죽음이나 윤회 혹은 환생과 관련되어 마이클 뉴턴(영혼들의 여행 저자) 만큼 압도적인 업적을 남긴 인물은 없다. 그 이유는 영혼의 특징과 실체를 그만큼 제대로 조사하고 파악한 인물도 없기 때문이다. 


마이클 뉴턴은 최면술의 퇴행요법을 이용해 피술자들이 경험한 사후 영혼의 세계를 객관적으로 잘 기술하고 있다. 물론 최면요법도 시술자의 의지에 따라 왜곡될 가능성은 있다. 최면 시술자가 피술자에게 엉뚱한 암시를 주거나 시술자의 능력이 부족할 경우 피술자가 전생이 아닌 전혀 엉뚱한 상황을 경험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생 최면은 최면수사에서 출발 


하지만 전생 최면 요법은 목격자에게 사건을 기억하도록 실시한 최면 수사 과정에서 탄생했다. 비록 최면요법이 100% 신뢰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수사 기법의 하나로 동원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최면요법이 죽음과 영혼 그리고 환생을 연구하는데 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인 셈이다. 


최면요법을 사용해 전생이나 영혼을 연구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마이클 뉴턴이다. 뉴턴의 업정 중 단연 압권은 영혼의 동시성을 발견한 것이다. <죽음의 미래> 저자 최준식은 영혼의 동시성은 자기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어서 그냥 넘어간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솔직히 나로서는 죽음의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했다는 그가 이 정도의 개념도 이해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여기서 잠깐 영혼과 육체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비판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영혼의 동시성 즉 영혼의 분할 능력은 우리의 영혼이 두세게 이상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는 컴퓨터 본체와 소프트웨어의 관계와도 같다. 


컴퓨터는 전원을 넣고 부팅을 하면 켜진다. 하지만 윈도우나 워드프로세서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단순히 소리내며 돌아가는 기계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각종 소프트웨어가 깔리면 컴퓨터는 엄청난 기능을 수행하는 스마트한 장치로 변한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육체가 하드웨어라면 영혼은 육체를  쓸모있게 만드는 소프트웨어에 해당 한다. 쉽게 말해 하드웨어인 육체에 소프트웨어인 영혼이 깔리면 비로서 하나의 생명이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쉽게 이해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이해 못했다면 이 글을 읽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재미난 글을 찾아 읽을 것을  정중히 권한다. 


영혼의 일부를 영계에 남겨 두고 온다 


마이클 뉴턴의 책 <영혼들의 여행>에 따르면 영혼들은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지구로 올때 영혼의 일부를 영계에 남겨 두고 온다고 한다. 혹자는 이것을 복사의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복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계에 남겨진 영혼의 일부는 그곳에 남아 개별적인 임무도 수행하고 심지어 수행이나 공부도 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일부 임사체험자들은 죽은 직후 영계로 갔을 때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마중나왔다고 주장 한다. 


일반적으로 환생은 빠르면 10년 이내 혹은 평균 30-50년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친지들은 임사자를 마중 나올 수가 없다. 그들이 이미 환생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임사자를 마중을 나올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영혼의 일부가 영계에 남아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뉴턴의 연구에 따르면 영혼은 두개 이상의 시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영혼에는 신과 유사한 '신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혹시 이준기 주연의 <아랑 사또전>에서 염라대왕이 여러 살람을 동시에 심판하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물론 이 장면을 몰라도 상관은 없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염라대왕은 수많은 사람의 생을 동시에 살피고 그들 모두에게 즉석에서 심판을 내린다. 신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 다는 통설을 드라마를 통해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우리의 영혼은 아직 미숙해서 영혼을 나누는 분할 방식을 통해서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영혼의 이런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면 죽음이나 환생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낼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영혼의 동시성을 밝힌 마이클 뉴턴의 연구가 가치가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또한 영혼을 단순한 실체로서가 아니라 신성을 지닌 존재로 이해 하면 죽음이나 환생이 지닌 궁극적인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 그만큼 수월해 질 수 있다. 영혼이 지속적으로 환생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는 마이클 뉴턴의 <영혼들의 여행>이나 <영혼들의 운명 1,2> 등을 읽고 각자 알아서 판단해 보길 바란다. 


관찰력 부족이 느껴진다


<죽음의 미래> 저자인 최준식이 영혼의 분할 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심 스럽게 지적하고 싶다. 


현재 한국에는 죽음이나 환생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흔치 않고 연구 실적 또한 미미한 편이다. 그런 와중에 그나마 최준식 같은 일부 학자만이 이 분야에서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고분분투하며 업적을 쌓아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준식의 글을 비판하는 것은 그의 글이 분석력은 탁월할지 모르지겠지만 관찰력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최준식의 <죽음의 미래>의 한대목을 살펴 보기로 하자.


"늙은 동물들은 아무리 늙어도 인간처럼 그렇게 주름지고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 늙은 동물들은 기력만 쇠할 뿐 몸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얼굴의 주름처럼 살갗에 생기는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노안이나 치아가 빠지는 등 늙으면 젊을 때와는 생판 다른 사람이 된다. 특히 여성의 경우, 그 아름답던 처녀 때의 자태는 노인이 되면 어느 곳에도 찾아볼 길이 없다." 


솔직히 이 대목을 보고 저자의 관찰력에 적잖이 실망을 했다. 저자는 나름대로 동물들을 관찰하고 이런 글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런 내용을 글로 쓰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솔직히 저자가 동물학자가 아니니 망정이니 동물학자가 이런 글을 썼다면 망신을 당할 수도 있는 내용이다. 


인간과 가장 밀접한 동물인 개를 예로 들더라도 저자의 글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한마리의 개를 10년 이상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에게도 빛나는 미모의 청춘기와 중년기나 노년기가 있다는 것쯤은 안다. 


개도 12년 이상 살면 젊은 시절의 미모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몸도 야위고 털도 빠진다. 게다가 빠진 털 사이로 보이는 속살은 탄력을 잃고 축 늘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것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물론 개를 안키워 봐서 몰랐다고 말한다면 나로서도 할말은 없다. 


하지만 성장하고 죽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모든 만물이 늙어간다는 것은 피고 지는 꽃이나 나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동식물은 비록 그것이 인간의 눈으로는 느끼지 못할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그들 나름대로 서서히 늙어 간다. 


만약 인간의 눈에 특정 동식물이 늙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이유는 딱 두가지 때문이다. 해당 동식물이 수명이 짧아 늙기도 전에 일찍 죽는 탓이거나 인간의 눈으로는 그 동식물이 늙어 가는 것을 쉽게 알아 차릴 수 없어서 일 것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인간의 착시가 불러온 오해일 수 있다. 


심지어 이런 착시 현상은 같은 인간종 사이에서도 흔하게 일어 난다. 비교적 최근의 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양인들이 볼 때 동양 여성이 초절정 동안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들의 눈에 동양인 여자는 거의 늙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 20-50대까지의 동양 여자들이 모두 같은 연령대인 20대로 보이는 경우가 허다 하다고 한다. 하지만 동양 남성들에겐 동양 여성들의 나이대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동양인들이 서양인이나 흑인들을 볼때 그들의 얼굴이 모두  비슷 비슷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그들이 20대인지 40대인지 조차 가늠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을 많이 접해 보지 못한 탓이 크다. 만약 오랜 세월 동안 그들과 어울려서 살면서 그들을 자세히 관찰했다면 그들의 얼굴형이나 나이대를 구분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동식물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가 관심을 갖고 관찰하지 않아서 그들의 생로병사를 제대로 모른다고 보는 것이 아마도 더 타당할 것이다. 


내가 굳이 본문을 인용하면서 까지 저자 최준식을 비판하는 이유는 저자 최준식의 영혼이나 죽음에 대한 연구가 관찰력 부족으로 방향을 잃고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드러난 현상조차 제대로 살피지 않고 무시한다면 누구나 오류에 빠질 수 있다영혼 분할은 이미 드러난 현상이다. 그것을 빼놓고 영계를 이해 한다는 것은 열쇠를 쓰지 않고 악력만으로 잠긴문을 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죽음과 영혼을 연구하려면 편견부터 버려야 


내가 마이클 뉴턴의 연구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죽음과 영혼 그리고 환생에 대한 문제를 방대한 사례를 비교적 정확히 관찰하고 그것을 편견없이 풀어냈기 때문이다. 마치 특종 기자들이 다양한 경로로 취재를 하고 자료를 모아 그것을 바탕으로 통찰력 있는 기사를 쓰듯이 그렇게 말이다. 


기자들의 경우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핵심이나 진실이 무엇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경우에 봉착하기도 한다. 이때 어떤 기자는 무식하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사람을 만난다. 그렇게 방대한 자료를 모으면서 앞뒤 안가리고 무조건 취재만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모은 자료와 취재한 내용이 믹스가 되면서 진실의 윤곽이 잡히고 사건의 핵심과 본질이 보일 때가 있다. 실제로 이렇게 작성된 기사들이 특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마이클 뉴턴의 연구도 바로 이런 경우이다. (물론 그의 연구는 아직 완성된 것도 아니고, 완벽한 것도 아니다.)


뉴턴은 환생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과 치료 방법의 하나로 최면 요법을 시행하던 중에 환생과 영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관심을 배경삼아 그는 수많은 피술자들에게 최면으로 전생퇴행 요법을 시행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영혼의 동시성이란 '특종'도 낚아냈다. 


<죽음의 미래>의 저자인 최준식씨도 지금 당장 특정 개념을 이해 못한다고 해서 그런 개념들을 무조건 무시하고 버리지 말길 바란다. 언젠가는 그것이 당신만의 특종으로 부활할 때가 올지 혹시 또 누가 알겠나?



참고> 신성을 이해 하고 싶다면 데이비드 호킨스의 <나의 눈>, 성경의 창세기 신이 음성으로 천지 창조하는 부분을 보면 도움이 된다. 이외에 작은 신(일부 영혼들의 일)은 무속이나 귀신현상을 참조해 보는 것도 좋다. 

요즘 지하철 5호선 개롱역의 에스컬레이터는 고장이 나서 작동이 안된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개롱역은 요즘은 화장실까지 수리중이다. 자기들 말로는 화장실을 업그레이드 중이란다. 이것까지는 그런대로 참아 줄 수 있다. 지하철 화장실은 환기가 잘 안되는 건지, 아니면 이용자가 많아서 그런 건지 냄새가 심해서 어지간히 급하지 않으면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종종 이런 소소한 불편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따로 계단도 없는 출구에 에스컬레이터를 떡하니 설치하고 그것이 고장 났다고 다른 출구로 돌아가라고 배짱을 부리는 것은 좀 짜증이 난다. 애초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할때 일반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모두를 공존 시켰다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운동삼아 계단으로 다니거나 급할때 사람들이 죽 늘어선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에 대한 고려없이 요즘은 지하철 입구를 통째로 막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롱역 에스컬레이터처럼 고장이 나면 아예 다른 출구로 다녀야 하는 불편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의 고장의 경우 사정이 약간 다르다.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를 계단삼아 걸어서 통과할 수 있다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가 통제되고 다른 출구를 이용해야 할때는 인상이 구겨질 수 밖에 없다. 


운동삼아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다른 출구의 계단을 택한다고 해도 버젓히 있는 출구를 놔두고 다른 출구로 다녀야 하는 것은 여러 모로 불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운동의 수준을 넘어 일종의 노동(?)이 되기도 한다. 


지하철 공사는 에스컬레이터 하나를 설치하더라도 생각이란 것을 좀 하고 설치했으면 좋겠다. 일반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공존하는 형태로 말이다. 

PC방이 민폐인 이유? 아직도 몰라?

삐딱한 시선 2013.06.10 09:37 Posted by 이재환

집 주변에 피씨방이 있는 사람이라면 피씨방이 민폐 시설이 될 수 있음을 쉽게 공감할 것이다. 


주말마다 피씨방에 모여드는 청소년들이 피씨방을 드나들며 밤새 떠드는 소리에 짜증이 나는 것은 기본이다. 이들이 피씨방 건물 주변에 머물며 왁자지걸 떠드는 소리는 층간소음에 버금가는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이뿐일까. 피씨방 건물의 복도는 담배 연기로 가득할 때가 많다. 심지어 피씨방이 있는 건물 주변에서는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종종 목격 되기도 한다. 물론 이를 제지하는 어른이나 경찰도 없다.


피씨방 건물안의 복도나 건물 주변은 이들이 뱉어 놓은 침이나 담배 꽁초로 가득할 때가 있다. 물론 청소를 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청소를 하자 마자 또다시 무섭게 쓰레기가 쌓이는 날도 많다. 


사정이 이런대도 피씨방 주인들은 피씨방이 우범지역으로 분류되는 것에 반발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볼때 피씨방과 그 주변지역은 경찰의 지속적인 순찰이 필요한 우범지역이 맞다. 


피씨방 주변 특히 건물 복도나 주변 도로에 담배 꽁초가 널려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론 범인은 대부분 피씨방 이용자들이다.청소년이든 어른이든 담배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는 일은 경범죄에 해당된다. 


게다가 청소년의 흡연은 계도 대상이기도 하다. 또 야간인 밤 10부터 다음날 아침 9시 까지는 청소년은 보호자 없이 피씨방 출입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피씨방 업주들의 묵인하에 청소년들이 심야에 피씨방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 이것은 엄연한 범법 행위이다. 


그리고 피씨방 주변에 모여서 장시간 떠드는 행위 또한 경찰이 충동해 해산시켜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경우가 많다. 피씨방 주변 10M 이내의 주민들은 이런 불편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런대도 우범지역이 아니라고 우길 텐가?

지난주 토요일 오전에 가스 점검을 받았다. 


가스 점검은 일년에 두번 통상적으로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점검을 나오신 아주머니의 황당한 행동에 열이 확 받았다. 아주머니가 가스 점검을 하시는 동안 난 아이패드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옆에서 멀뚱히 구경하는 것도 어색해서 점검원 아주머니가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나름 배려한 것이다. 여성 검침원이나 가스 점검원 분들이 남자 혼자 있는 집에 들어 가면 상당히 불안하고 부담 스럽게 느낀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닌게 아니라 얼마전 수도 검침을 나갔던 50대 여성이 살해를 당한 끔찍한 사건도 있었다. 


마침 아내도 회사에 나가고 혼자 집에 있는데, 아주머니가 오셨으니 그분이 부담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스가 설치된 부엌과 보일러실만 안내해 드리고 나는 내 볼일을 봤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터지고 말았다. 


아주머니가 돌아가고 나서 두시간 정도 지나 라면을 끊여 먹으려고 가스를 켜려다가 화들짝 놀랐다. 가스 벨브가 보란 듯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아주머니가 점검을 위해 열어 놓고 그냥 간 것이 확실해 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스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점검을 나온 사람이 가스 안전은 커녕 되레 고객을 '위험'에 빠뜨리고 갔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홧김에 가스 공사에 전화를 걸어 민원을 제기할까, 아니면 점검 나왔던 아주머니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강력하게 항의를 할까하고 생각하다가 결국은 그냥 참았다. 사람이니 한번쯤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쓴 것은 개운하지가 않아서다. 가스 점검 나온 사람이 가스 벨브를 열어 두고 간 것은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일하다 딴생각을 했거나 아니면 원래 정신이 없는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분은 이런 일을 해선 안된다. 


가스점검의 목적은 가스안전인데, 아무리 정신이 없고 머리 속에 딴 생각이 들더라도 벨브를 열어 두고 가는 실수는 절대로 해선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가스 공사는 점검원들의 기본교육부터 철저히 했으면 좋겠다. 

요즘 층간 소음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 


층간 소음의 경우 일부 건설사의 부실 시공이 직접적인 원이이겠지만 인구의 급격한 증가 좀더 정확히는 인구의 도시집중과도 관련이 깊다. 


날이 갈수록 사적인 공간을 잃어가는 현대 도시인들은 밀집된 공간에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타인과의 거리가 좁아 질수록 그로인한 마찰로 스트레스 또한 증가하게 되어 있다. 


지금은 층간 소음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런 문제가 좀더 확되되어 일조권 침해 문제는 물론이고 이웃간의 사생활 침해로 인한 각종 사회문제가 터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도심의 건물들은 효율적인 토지 이용을 위해 여유 공간없이 촘촘히 지어 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웃과의 거리도 극도로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함부로 거실문이나 창을 열수도 없는 지경이다. 이웃집 거실이나 방안이 훤히 들어다 보이거나 반대로 자신의 사생활이 이웃에게 노출될 간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창문에 차면시설을 설치해 사생활을 보호할 수도 있지만 일부 건축주의 경우 비용이나 미관상의 이유로 창문 가림막을 설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건축법상의 차면시설 설치 기준도 이웃집과의 직선 거리 2m로 규정하고 있다. 


창문 가림막 설치 2M는 행정 편의주의 


2m 이상이면 이웃집에서 자신의 집안을 훤히 들여다 보는 구조라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제약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현실적인 규정에 불과하다. 실제로 창문의 구조에 따라 10m 이내에서도 이웃집의 사생활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사생활의 침해 정도에 촛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단순히 직선 거리 2m 정한 것은 행정편의주의로 밖에 볼 수 없다. 게다가 일부 지자체는 사생활 침해 문제에 대한 민원을 제기해도 건물간 거리가 2m 이상이라는 이유로 나몰라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개인들이 층간 소음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자신만의 사적공간을 침해 당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작용한 탓도 크다. 마찬가지 이유로 이웃과 마주하는 창문을 두고 불거지는 사생활 침해 문제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될 수 있다. 이 문제를 가볍게 보고 무시하다가는 층간소음처럼 큰 사회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가끔 붐비는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음식이나 음료수를 섭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출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커피와같은 음료수를 들고 타는 사람이나, 심지어 햄버거 빵 등 냄새가 심한 음식을 꺼내 놓고 먹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음식 냄새도 짜증스럽지만 행여라도 음료수를 업지르지는 않을까 걱정 스럽다. 출퇴근 길처럼 붐비는 시간대의 지하철은 자주 급정거를 한다. 이 시간에는 배차 간격이 좁아 차간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급하게 정지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유난히 급정거가 많은 날에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음료수나 커피를 들고 있으면 속으로 내심 불안하다. 행여라도 커피가 내게 쏟아 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음식 먹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거리낌 없이 그런 민폐를 끼치는 이유가 뭔지 볼 때마다 궁금하다.  


아무리 바빠도 식사는 집에서 하고 나왔으면 좋겠다.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것 까지는 그나마 참아 주겠는데, 음식을 먹는 것은 좀 참기가 힘들다. 


가끔씩 가는 집근처 도서관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서 부시럭 거리며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보기도 한다. 도서관 사서들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특별히 제제를 가하지도 않는다. 물론 도서관  출입구 앞에는 '음식물 반입금지'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요즘은 학교에서 공중도덕은 안가르치고 시험 치는 요령만 가르쳐서 그런 걸까. 이런 사람들에게서 공중 도덕은 좀처럼 찾아 보기가 어렵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소신 것 행동하는 것이 항상 멋진일은 아니다. 때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공공장소가 바로 그런 곳이다. 


최소한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공공장소에서 만큼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나 하나 편하자고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면 그런 소신은 일찌감치 접는게 좋을 것 같다.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를 각 가정에 걸어두고 우상화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남한에서도 이런일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 S구청장의 경우가 바로 그런 사례이다. 이분의 사진은 구청은 기본이고 동사무소나 심지어 공공 도서관에서도 볼 수있다. 구청장을 선거로 선출하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으로 보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자신을 알리기 위해 기를 쓰는 모습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구청 홈페이지를 보면, 구청장 본인의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놓고 일정을 소개하고 홍보하기에 바쁘다.


물론 자신을 알리는 일이 나쁜 것은 아니다. 요즘은 자기 피알 시대이니까. 하지만 이 구청장이 정작 구정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자기를 홍보하고 치장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치고 자신의 임무를 '실속있고 충실하게 잘'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사회부 기자들이 이 글을 본다면, 관공서에 사진이나 걸어두고 자신을 '우상화'하기에 바쁜 일부 구청장들이 정작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취재좀 하시길 바란다. 

진상 공화국의 자화상

삐딱한 시선 2013.04.23 15:18 Posted by 이재환

뭔가 하나 터지면 온통 그쪽으로 쏠리는 우리 언론의 쏠림 현상은 여전하다.


언론들이 한동안 북한발 뉴스로 재미를 보더니, 이제는 온통 항공사 스튜어디스 관련 뉴스로 도배를 하고 있다. 어느 회사의 '높으신 잡놈'하나가 운행중인 여객기에서 스튜어디스에게 폭언을 일삼고 진상짓을 한 모양이다. 


언론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항공사 승무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완장 하나 달아 주면 그게 제 힘인양 착각하고 설치는 진상들이 존재하는 이상 대책을 마련해도 그때 뿐일 것이다. 게다가 그놈에게 필요한 것은 대책이 아니라 법적 처벌이다. 


요즘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김혜수가 꼭집어 지적한 것처럼, 정규직 즉 직장에서 4대 보험 받는 사람들은 어쩌면 직장의 노예일 수 있다.(나만은 결코 노예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나? 현실을 좀 직시하자.)


따지고 보면 사고를 친 그놈도 완장찬 노예에 불과하다. 제 딴에는 돈좀 더 버는 고급(?) 노예랍시고, 감정 노동자인 스튜어디스를 얕잡아 보고 진상짓을 한 것이다. 다행히도 그놈의 진상짓은 '딱 걸리고' 말았다. 그 점에선 깨소금처럼 고소하다.


사실 이번 사건은 대책 보다는 그런 인간들이 '딱 걸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요즘은 누구나 휴대폰으로 동영상이나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심지어 SNS로 속보도 올릴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진상들을 수시로 솎아 낼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을'이란 이유로 부당함을 꾹참고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번 일은 운이 좋아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인권 관련 사건들이 소리 소문없이 묻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진상 공화국에 사는 시민들의 인격 하나 하나에 안전장치를 달아 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해 보인다. fanterm5@

아이패드 액정은 거의 1년 반에 한개 꼴로 뽀개 먹는 것 같다. 


액정을 정품으로 교체하려면 거의 40만원이나 드는데, 아이패드2 와이파이형 가격이 60만원(3년전 2010년 기준)선 이다. 차라리 아이패드를 하나 더 사는 편이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아이패드 수리는 보통 사설 업체를 이용하게 된다. 물론 사설 수리비도 만만치가 않다. 아이패드2는 제품이 나온지도 오래되었다. 그런데도 액정 수리비는 여전히 비싸다. 사설 수리업체 기준으로 10만원에서 16만원 선(아이패드2는 10만원이 최저가).


아이패드는 제품이 좋기는 하지만, 사후 서비스가 엉망이고 수리비가 높은게 가장 큰 흠이다. 사용할 때는 편리하고 좋지만 막상 고장이 나면 애물 단지가 되는 아이패드. 점점 계륵이 되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