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되찾은 시대정신

내멋대로 칼럼 2008.06.07 04:28 Posted by 이재환

시대정신이나 민주주의. 요즘처럼 먹고 살기에도 힘든 세상에 이런 것을 고민하는 일은 구시대적이다 못해 식상한 느낌까지 준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불붙은 촛불 시위가 한달 이상 지속되면서 그 안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시대정신까지 읽히고 있으니 오히려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면서도 동시에 낯선 시위 장면이 그렇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혜택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이면 어떤 상황에서든 그것이 곧 '축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한데 있을 것이다. 개인주의로 비록 공동체 의식은 희박해 졌지만, 그래서 외롭지만, 우리는 언제든 하나의 목표를 위해 또다시 광장에 모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일까. 축제처럼 즐기는 시위는 낯설 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하다. 이번 촛불시위는 기존의 소통방식을 완전히 바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들은 단순히 '미국산 쇠고기의 재협상만'을 위해 거리에 있는 것일까.

물론 그들은 각자 '대통령에게 할 말이 있어' 그 곳에 나갔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맞서고 있는 것은 단순히 대통령이나 광우병 쇠고기가 아니다. 머슴을 자처한 대통령이 사실은 권위주의로 똘똥뭉친 '꼰대'라는 것을 그들은 이미 눈치채고 있다.

또 그의 주변에 있는 또다른 '꼰대'들이 논리나 과학이란 이름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들은 뿔이 나 있다. 지금 촛불들이 하고 있는 일은 큰 틀에서보면 기득권과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을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를 심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정보를 독점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때문에 지성이나 비지성의 경계도 모호하며, 그것을 애써 강조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다. 또 기자와 시민 기자의 간격은 점점 더 좁혀지고 있다. 실제로 요즘은 언론이 여론을 이끄는 게 아니라 되레 여론이 언론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소통의 구조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 미쳐 적응하지 못한 조중동을 비롯한 일부 보수언론들은 시위 초반 촛불시위대에 대한 왜곡 보도를 일삼다가 누리꾼들의 '광고주 압박 운동'에 의해 일격을 당했다. 그 뒤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보수언론들의 촛불시위에 대한 보도 태도에 변화가 생겼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의 '꼰대'들은 이런 변화를 부정하고, 그것을 거꾸로 돌리고 싶어 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광우병 관련 글들을 '괴담'으로 치부하고, 사람들이 광장에 모인 이유를 '배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 꼰대들의 행동이나 말을 보면 실제로도 그렇게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그러면 그럴 수록 촛불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앞 광장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단지 누군가 스크린을 설치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그곳으로 나올 것을 강요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축구는 함께 봐야 재밌다'는 생각으로 하나둘 시청앞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 민국'을 신나게 연호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고, 그래서 더욱 즐거웠다.

2008년 MB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스크린을 설치했다. 그러나 그것은 권위주의적이며 소통이 없는 장벽이었다. 그 권위주의의 장벽에 맨 먼저 맞선 것은 누구도 예상 못했던 소녀들이었다. 그녀들의 뒤를 이어, 사람들은 하나둘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다. 누군가는 무대를 설치해 공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유발언으로 묵묵부답인 '장벽'을 향해 호소했다. 그뿐이다. 여기에 굳이 배후가 필요할까.

시대는 이처럼 변했는데, 보수주의 권력자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귀환'은 전혀 달갑지 않았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지난달 국민의 뜻을 전하겠다며 청와대로 향한 모 정당 최고위원은 대통령에게 안부 인사만 건네고 돌아왔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며칠 동안 시위를 하는 와중에도 일부 방송이나 보수언론은 한동안 침묵했다.

이뿐일까.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정부의 각 부처들은 속속 기존의 입장이나 정책을 뒤집으며 권력 앞에 일렬 종대로 헤쳐 모이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공권력은 기자들의 카메라와 시민들이 촬영을 하고 있는 가운데도 보란 듯이 폭력을 행사했다. 누리꾼들은 인터넷으로 이런 장면을 실시간 전송 받으면서 이미 오래전에 폐기 처분된 줄 알았던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를 느껴야 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 현상이 급격히 진행된 것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었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면에는 조중동 등의 보수언론 기사들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포털이 아닌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을 찾으며 상황을 체크해야 했다.

그러나 촛불 시위가 지속되면서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 둘 다시 제자리로 돌아 오기 시작했다. 방송은  촛불시위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촛불을 '좌파'로 몰며 배후세력 운운하던 보수언론이나 보수 주의자들의 강경한 태도도 수그러 들었다. 포털뉴스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정상적인 형태로 돌아 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MB와 틈만나면 궤변을 늘어 놓는 그의 추종자들 뿐인 듯하다.
<오마이뉴스 이재환>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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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멋대로 칼럼 2008.06.06 10:21 Posted by 이재환
장면 2] MB가 촛불을 끌수 있는 방법

하나. 쇠고기 협상 과정의 실책을 인정하고,  재협상 선언을 해야 한다.
- 그동안 너무나 많은 정책 오류로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는 식의 단편적 대안으로는 사태 해결이 어렵다. 또 그동안 정부가 말을 자주 바꿔 온 전력도 있어 단순한 선언 수준으로는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정부의 '소나기 막기'식 대응 태도는 이미 시민들에게 '꼼수'로 읽혀 더이상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처음 촛불시위를 촉발한 고교생들의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 고등학생들의 주장에 답이 있다
-'0교시 수업받고, 점심은 미친소 먹고, 그러다 죽으면 대운하에 뿌려지고'
솔직히 고등학생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정말 충격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라서가 아니라, 이미 어느 정도 정치적 현안에 대해 알고 있고, 또 관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MB는 대운하 포기 선언을 해 '미친소'로 날린 '신뢰'를 회복하고,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해 보인다. 고교생의 힘. 그것은 인터넷과 논술, 민주주의의 산물이다. 그 힘을 인정해야 한다. '몰라서, 오해라서' 따위의 변명은 더이상 안통한다. 그들이 언어를 상징적이면서도 쉽게 구사하는 것은 결코 '뭘 몰라서'가 아니다. 그들은 모든 사안에 대해 폭넓고 발전적인 접근을 한다. 그것을 통해 사안을 한마디로 압축해 널리 공유하는 것이다. 이것 보다 힘있는 여론 형성과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셋. 청계천의 감상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최근의 발언을 보면 대통령은 아직도 자신이 서울 시장인줄 아는 듯하다. 서울 시장 시절 그가 추진한 정책에 대한 평가들을 마치 온국민이 내린 평가로 판단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냉정히 말하면, 청계천은 원래 목적했던 '친환경적인 도심의 강'이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한강물을 전기로 퍼다 나르고 있는 상황에서 친환경적인 하천이라고 말할순 없기 때문이다. 임기내 완공이란 목표 탓에 공사를 서두른 나머지 곳곳에서 부실도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대운하는 다르다. 서울시의 정책이 아니라, 전국민이 관심을 갖는 국가적 정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만큼 국민적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청계천처럼 속전 속결로 일처리를 했다간 '소망정권(소로망한 정권)이 운하에 수장'되는 결과만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넷.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
임시방편이나 임기응변은 대선과정에서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큰 효과를 볼 수있다. 그러나 막상 정권이 시작되면 상황은 다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국민 반발이 심한 정책에 임시방편식의 땜질만 하고 있다. 때문에 최근 정권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이다.

다섯. 언로를 막을 수 있다고 보는가?
지상파 방송에 핵심인사 몇명 심고, 각종 개인정보 정책으로 인터넷을 통제하고, 포털 메인뉴스를 장악한다고 언로가 완전히 막히진 않는다. 물론 부정적인 여론의 확산 속도는 일시적으로 늦출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말그대로 일시적으로만 가능하다. 각종 현안에 대한 정보는 포털이나 일부 언론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우회해서 접하면된다. 그리고 그안에서의 공감이나 '소통'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기능들을 모두 차단할 수 있다고 보는가?. 단언컨데 그것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혹시라도 그런 꿈을 꾸신다면 미리 포기하시는 것이 좋다.
[링크] 한겨레21에 딱걸린 MB 정부의 언론통제 꼼수

여섯. 엘리트 주의는 권위주의의 산물이다
요즘은 모든 사안에 대해 개인 하나가 완벽한 해답이나, 결론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누리꾼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상호 보완 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타인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새로운 지성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지성인을 가장한 권력자들은 권위주의적 사고에 함몰돼 아직도 꽉 막혀 있다. 그러니 소통이 될리가 없다.

더구나 일부 지성은 이미 권력이나 기득권 그리고 조직 앞에 아무런 저항없이 투항한 상태다. 서울대를 나와 법관까지 지낸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지난해 BBK 관련 동영상에 대해 '주어가 빠졌다'는 발언으로 사태를 무마하려다, 누리꾼들로부터 '주어 경원', '내가 경원'이란 놀림을 받았다. 물론 이것은 한나당이란 조직과 대선후보를 방어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변명은 궁색하기 짝이없는 것이었다.

우리시대 지성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이 돈과 권력 앞에 '지성인의 길'을 포기한 사이 사회가 진보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임기응변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지성인이 아닌 '꼰대'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일부 '지성'들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임기응변으로 일관하고 있을 때 네티즌들은 정보를 교류하고, 생각을 나누며 발전하고 있다.

장면1] 촛불은 원인제공자가 끄세요
MBC 100분 토론, 임헌조씨 발언
뉴라이트전국연합, 말실수로 '자폭'

정치적인 글은 자제하고 싶었는데, 요즘 자주 쓰게 되는 군요.

6일 새벽 MBC 100분 토론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임헌조 사무처장은 "촛불로 자기집을 태울 수는 없다"며 촛불집회를 이제 그만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예, 저도 그 말씀에 일정부분 공감합니다. 애국자는 아니지만, 저도 시국이 불안하게 느껴지긴 마찬가지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촛불을 누가 끌 것이냐에 대해선 뉴라이트의 입장에 동의 하기가 어렵습니다. 촛불은 그것을 들어 올린 시민들이 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촛불을 들 수 밖에 없게 한 장본인(MB)이 직접 끄셔야 합니다. 물론 그 방법으로 물대포는 절대 아니어야 하며, 몽둥이도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촛불들이 납득할만한 대책을 내놓고, 반서민적 정책들을 철저히 재검토하고, 그들이 더이상 촛불을 켤 명분을 갖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마무리 해야 합니다. 그러면 촛불은 자연스럽게 꺼질 겁니다.

[짜투리 뉴스]
이날 임헌조씨는 '미국의 맥도널드 햄버거는 30개월 이상 소의 내장까지 사용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무리를 빚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맥도널드 측은 '임헌조씨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며 긴급해명을 했습니다.
나경원 의원님 6일 새벽 MBC 손석희의 100분 토론 잘 봤습니다.

토론을 보다 보니 대통령이 왜 여지껏 소통이 안되고 있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소위 '참모'들조차도 국민과 소통이 안되고 있는데, 대통령은 오죽 하겠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경원 의원님을 대통령의 참모라고 말한 것은 의원님이 대선 당시까지 한나라당의 대변인이었고, 때문에 당시 대선 후보였던 대통령과의 '소통'이 가장 활발했을 정치인 중 한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쇠고기 파문의 핵심은 크게 두가입니다. 쇠고기 안전성 문제와 졸속협상이 바로 그것이죠. 안전성 문제는 물론 과학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두번째 졸속협상의 문제는 과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실의 문제이자 대통령의 외교력과도 관련된 문제입니다.

취임초 가졌던 대미외교는 미국에서만 중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새 대통령이 다루기가 까다로운 미국을 상대로 어떤 외교력을 발휘하는 지를 살피는 첫 시험대였기 때문이죠.

국민들은 '졸속협상'의 배후가 궁금합니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나오자 '국민에게 광우병 쇠고기를 먹일 수 없다'며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하는 데 일조를 했습니다. 또 이 문제를 조중동 신문과 방송이 일제히 보도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고등학생들까지도 광우병 쇠고기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광우병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공포감도 조성 됩니다. 이때 '광우병 위험성'을 유포한 당사자들이 최근에 와서는 그것을 '괴담'이라며 말을 바꾸더군요. 이것은 논술 공부를 하느라 신문을 열심히 보는 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든 배경이기도 합니다. 한라당과 조중동 그리고 어른들은 다 까먹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난해 문제된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 물질이 제거된 30개월 미만의 소였고, 거기서 나온 것은 단지 뼛조각 하나 였습니다. 지난해에는 미국산 쇠고기의 뼛조각 하나까지도 용납못하겠다며 국민을 위하고, 생각해주던 그 한라당은 집권한 후 대체 어디로 가고, 국민들이 직접 촛불을 들게 만드는 것인가요?. 더구나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체결한 협상에는 '30 개월 이상의 미국소인데다, 뼈는 물론이고 내장까지도 수입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선 왜 침묵하십니까?

또 이번 협상의 배경은 '한미 FTA 연내 비준을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정부는 이를 부인했지만, 이런 정황들은 이미 언론을 통해 속속 보도되었습니다.  

언론 보도대로 FTA가 목적이었다면, 쇠고기 시장을 먼저 열어 줄 이유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먼저 '미국에 쇠고기 시장을 재개방하면 미국 정부가 의회를 압박해 FTA를 연내 비준할 것이다'라는 식의 발상은 상대에게 자신의 패를 미리 보여주고 고스톱을 치는 것과 마찬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또, 언론에 따르면 미국내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지도 않더군요. 미의회에서 한미FTA 연내 비준이 불가하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가 하면, 내년엔 정권까지도 교체될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미 FTA 협상에 부정적인 민주당 오바마가 유력한 주자죠). 이처럼 미국의 최근 분위기상 FTA 연내 비준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대통령은 본의는 아니시겠지만, 국민의 먹거리를 가지고 일종의 '도박'을 하신 겁니다. 이게 바로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대목이자, 대통령의 외교력에 대해 의문을 품은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것도 대통령의 첫 외교작품부터 말이죠.

또, 만약 정부나 한나라당 일각의 주장대로 FTA가 목적이 아니라, 한미 외교의 복원이 목적이었다면, 이것은 국민들에겐 '조공외교'로 비추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여당이나 정부에게 결코 유리한 논리는 아니죠. 사실, 그런 '변명'들 때문에 국민들은 더욱 크게 반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더 주목할 게 있습니다. 나경원 의원님은 아직도 촛불시위의 배후가 궁금하신 모양인데, 오히려 국민들은 '졸속 협상'의 '배후'를 궁금해 합니다. 그 '배후'가 한번 옳다고 믿으면 불도저처럼 일을 추진한다는 대통령의 성품인지, 아니면 외교 능력 인지, 혹은 소통의 문제인지를 말이죠.

물론 저는 이것이야 말로 소통의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분명 한나라당 출신입니다. 그렇다면, 지난해 한나당에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지적하셨다는 점을 알고 계셨을 겁니다. 설령 대통령이 몰랐다고 해도, 지난해 '뼛조각 사건' 당시의 정황을 잘 알고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최소한 이번 협상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국민 반발도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구요. 물론 정부 당국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상황이 이쯤되면 당연히 협상의 최대 변수인 '국민 정서'도 고려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부든 한나라 당이든 지난해와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 이상, 협상을 하기 전에 충분히 국민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구요. 만약 국민에게 미리 알렸다면, 사전에 국민 반발 기류를 감지해 협상시 참고를 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했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크게 터지진 않았겠지요. (정부가 협상전에 한나라당에 일언 반구도 없었다면, 그것은 완벽한 소통시스템 부재입니다.)

또 졸속협상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어땠습니까. 국민반발로 인해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까지도 '오해다, 국민이 잘못 이해해서 그렇다, 과학적인 문제다'로만 일관했습니다. 물론 최근 대통령이 직접 담화문을 낭독하긴 하셨지만, 국민의 생각이나 감정과는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냉정히 말하면, 대통령께서는 외교력의 첫시험대에서 낮은 평가 혹은 낙제점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의 문제가 당연히 아닙니다. 어쩌면 국민들이 지금까지도 촛불을 끄지 않는 이유는 대통령께 한번더 신뢰를 쌓을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이렇게 촛불을 드는데, 대통령께서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지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부분은 제가 고민할 부분이 아닙니다. 답은 대통령이 민심을 정확히 읽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국민들의 요구는 크게 미국과의 재협상, 그리고 배경적 요구는 정책의 소통 시스템 강화 및 국민의사 반영- 정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처음보다 더 커진듯함. 물론, 이미 상당수의 분들이 재협상을 초지일관 주장함.)

소통의 문제,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최근 대통령도 소통의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소통의 과정과 결과입니다. 아무리 대화를 하고, 의견을 주고 받아도 정작 의견이 결과(정책)에 전혀 반영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소통이 아닙니다. 일방통행일 뿐이죠. 더구나 반드시 합의가 필요한 문제를 사전에 아무런 합의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만하고 끝난다면, 이것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부재의 문제가 됩니다.  

아시다시피, 촛불시위는 쇠고기문제 하나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쇠고기 파문에 앞서 정부는 집권초부터 강부자 고소영 내각에서부터 사교육을 부추길만한 각종 교육정책, 민영화, 오락가락하는 대운하 등에서 이미 지지자 이탈과 국민 반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또,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없었습니다. 국민을 설득하기에 앞서 공청회나 청문회를 통해 대화를 하는 등의 소통이 없었던 것이지요. 이런 가운데 쇠고기 문제가 터지고, 국민은 촛불을 들었습니다.

최근 정부가 그런 정책을 쏟아 낼 때, 과연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나, 여당인 한나라당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정책의 변수를 예측해 대통령에게 직언하기는커녕 '예스맨'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아니면 반대로, 참모들이 직언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고집을 부려 일이 이렇게 된 것인가요?. (실제로 촛불시위자들 중에 '이명박 아웃'이란 피켓을 드시는 분들은 후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통령이 앞으로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또 소통이란 것 특히 대화는 미리 모든 결론을 정해 놓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을 정하고 그것을 밀어부치면, 그것은 통보지, 대화나 소통은 아닙니다. 합의를 전제한 대화에서는 결론을 내기 전에 자신의 의사부터 상대에게 정확히 설명을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상대가 반대하면, 좀더 시간을 두고 대화하면서 합의점을 찾거나, 그래도 안되면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 자신의 의사를 포기할 때도 있어야 그게 대화입니다.

나경원 의원께서는 대통령이 지금까지 국민과 서로 의사를 주고받는 쌍방향 소통을 하고 있었다고 보십니까?. 물론 다수의 국민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최소한 누리꾼적 사고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대통령의 소통방식은 '독재'입니다. 그러니 누리꾼이 주축인 촛불시위에 '독재타도'란 말이 나오는 것이지요. 나경원 의원님이 독재타도란 말에 많이 놀라신 듯 보여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래도 이해가 안가시면, 촛불시위에 나가셔서 그런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그걸 들고 있는지 직접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 공권력의 폭력 진압이후 독재관련 피켓이나 구호가 더 늘었습니다.)

좌우의 관점을 넘어서야 촛불시위가 보입니다

단언컨데 촛불은 이미 냉전시대의 산물인 좌우의 개념을 넘어 섰습니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념 따위는 그들(촛불)에겐 통하지도 않을 개념입니다. 뉴라이트와 같은 보수주의적 관점이나 좌파 운동권의 관점에서 이번 시위를 접근하면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기가 어렵습니다. 언론에 따르면 최근에는 보수단체인 '박사모'까지도 촛불대열에 합류하겠다는 의견을 냈다고 합니다. 좌우의 이념으론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일단 그들의 피켓을 보면, 그 내용이 천차 만별입니다. 그 유명한 '미친소 너나 먹어'부터 최근의 '독재타도'에 이르기까지 내용도 가지각색입니다. 물론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으니, 표출되는 의견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공통점은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대통령을 향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위주의 시대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들은 대통령에 대해서도 절대적 권위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서로 의사소통을 해야할 '파트너'로 보고 있는 것이죠.

물론 광장에 가면 일부 시민단체에서 피켓을 나눠주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그 내용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맹목적으로 그걸 받아 들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직접 준비한 것을 들거나, 혹시 누가 피켓을 주더라도 자신의 뜻과 비교적 일치하는 것을 선택해서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도 현장에서 확인 하시길.

그들은 또, 한쪽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날 듯 싶으면 "비폭력, 비폭력"을 연발합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일종의 암묵적 합의인 것입니다. 이것은 인터넷 문화의 자정기능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누군가 의견을 내면, 또다른 누군가는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그것을 수정해 오류를 줄이는 절차를 말합니다. 그들은 인터넷에서처럼 시위장에서도 폭력을 스스로 자제하고 분위기도 자정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모인 사람의 숫자에 비해 폭력사태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배후는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의 의사소통 방식은 명령을 하달하는 수직적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니 명령하달식(?)의 기존의 시위 문화화도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소통방식은 소통이 아예 안되는 정부와는 더더욱 궁합이 안맞을 수 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이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정책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배후를 밝히는 핵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누리꾼들이 '정치 세력화'한 배경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누리꾼이 반발한 대표적인 정책은 영어몰입교육, 의료보험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미국산 쇠고기 등입니다. 뭔가 보이시나요? 대체로 생활 밀착형 정책들 입니다. 그들은 지금 자신의 실생활에 관련된 정책에 즉각 즉각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배후는 인터넷이자, 그들의 실생활이 아닐까요?.

나경원 의원님. 그들의 배후를 궁금해 하시기 전에 그들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차분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정권이 소생할 유일한 길입니다. 제가 보기엔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배후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로 보입니다.

그들에게 "촛불을 내리라"고 말하기 전에 그들이 왜 촛불을 들었는지를 우선 살피십시오. 소통의 출발은 원인 제공자가 상대의 뜻을 헤아리고, 먼저 다가가는 것에 있습니다. 물론 말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확실한 실천이 뒤따라야 겠지요.

* 나경원 의원은 100분 토론에서 무대 설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저도 이 부분은 광우병 대책위에서 하는 것인지, 아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는지, 정치관련 단체가 후원을 하는지, 확인하지 않아 정확히 모릅니다. 물론 나경원 의원의 입장에선 중요한 문제일수도 있어 보입니다. 혹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아시는 분은 나경원 의원님께 설명 부탁드립니다.

* 나경원 의원님, 돈 문제에서 제가 알고 있는 것 하나 말씀드립니다.
정부가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정부광고를 싣지 않자, 누리꾼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내서 이 신문들에게 광고를 냈습니다. 근데 놀라운 것은 돈을 낸 카페나 사이트가 야구 동호회, 여성 화장품 관련 카페였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정치를 위해 모인 집단이 아닙니다. 이런 사례에 대한 의미도 좀 살펴 보십시오. 누리꾼들은 정부가 비판언론인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고의로 광고를 싣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아들과 함께 외치는 '이명박 아웃' - 경향신문

나경원 의원님이 이날 '이명박 탄핵'을 외치는 사람들이 불순한 세력인 양 몰아가고 싶어 하시던데, 조선일보만 보시지 마시고 위에 링크한 기사도 좀 읽어 보세요. 평범한 시민들이 어째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도 살피시구요.

MB는 촛불을 이길 수 없다

내멋대로 칼럼 2008.06.04 00:07 Posted by 이재환

'제네들, 저러다 말겠지.'

아마도 정부는 이 정도 수준의 생각으로 촛불을 얕잡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쩌나?. 정부가 아무리 물대포를 쏘고 공권력을 동원해 엄포를 놓아도 촛불은 결코 지치거나 패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들은 정부와는 '노는 방식'에서부터 다르다. "미친소 너나 먹어!"라는 경쾌한 문장에서부터 정부는 이미 촛불시위대에 졌다. 그들의 의사 표현 방식은 이처럼 단순 명쾌하다. 미국 쇠고기가 그렇게 좋으면 '너나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과학이 어쩌네 저쩌네 하며 떠는 것 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거기엔 웃음과 해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MB가 생각하는 '잃어 버린 10년'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자유와 평화,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소통방식이 만들어낸 차세대 한국인들인 것이다.

그들의 눈에 MB는 이미 과거이자 꼰대일 뿐이다. 어느날 갑지기 꼰대 하나가 나타나 그들에게 영어 몰입교육이내 뭐내 하며 '과거로의 회귀'를 권했다. 거기다 '급식으로 미친소 먹고, 대운하에 빠져 죽으라'니 꼭지가 돌만도 하다. 그래서 그들은 촛불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촛불은 본의 아니게 MB 보다는 훨씬 덜 꼰대화된 세대들까지도 감동시켰다. 그래서 '예비 꼰대'들은 촛불소녀들의 뒤를 이어, 광화문으로 청계천으로 달려갔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역사는 아마도 이 사건을 '1차 디지털 혁명'이라고 기록할 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싸움의 기술에 있어도 정부 보다는 한수 위에 있다. 억압된 감정이나 분노를 푸는 방식은 물론 소통의 방식도 다르다. 마이크를 잡고 해산 명령을 내리는 경찰에게 "노래해"를 연발하고, 물대포를 쏘아대는 공권력 앞에 우의를 입고 나가, "쏴라, 쏴라~"를 외치기도 한다. 사정이 이런대도 정부는 최근 경대응으로 일관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소화기를 분사하며 엄포를 놓는다. 그러면 그럴수록 시위대만 늘어날 뿐이다.

이쯤에서 MB는 자문해 봐야 한다. 아날로그적인 사고 패턴으로 디지털 세대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소통의 방식이 쌍방향이 아닌 설득을 가장한 '명령 하달식'은 아닌지를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그들은 누가 동원해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간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들은 이미 시위를 축제와 문화 해학으로까지 발전 시키며 장기전에도 대비하고 있다. 이는 그들과 싸우면 싸울 수록 불리해 지는 것은 오히려 정부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그들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정부의 말바꾸기나, 신뢰감 떨어지는 정책보다는 그들의 행동이나 말이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란 점이다. 재미와 감동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설득의 힘까지 갖추고 있다.

정책하나 가지고도 이리 저리 말을 바꾸며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꼰대 정부'가 3개월이 지나도록 못한 일을 그들은 단 며칠 만에 해냈다. 시청에 나가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어 보라, 내 말이 틀린지.

물론 꼼수를 부려 이 순간을 모면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정치방식에는 감동이 없다. 따라서 사람이 모일리도 없다. 민중 없는 정치는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MB라면 차라리 촛불에게 백기를 들겠다. 그것은 결코 모양 빠지는 일이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미국과의 재협상이 어려운가. 그렇다면, 최소한 협상 과정에서 발생한 착오와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을 국민 앞에 사과하면 된다. 그렇다면 단순히 사과만 하고 끝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일까. 물론 아닐 것이다. 일본과 대만의 협상결과를 보고, 그 틈을 노려 반드시 재협상을 하겠다고 국민을 설득하면 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 때가되면 재협상을 시도해 국민이 흡족해 할만한 결과를 내면 된다. 그것이 바로 소통의 방식이자 감동의 정치이다. (물론 이 방법도 이미 늦은 듯 보인다.)

그러나 '꼰대 MB'는 촛불 뒤로 숨어 버렸다. 국민이 발끈하면 잠시 뒤로 숨어 있다가 다시 나와 딴소리를 한게 벌써 여러번이다. 바로 그런 태도 때문에 촛불 시위의 피켓에 'MB OUT'이란 문구까지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일까. 서른살 중반의 '예비 꼰대'인 필자의 눈에도 MB는 무척 위태로워 보인다. 고집을 부리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MB는 그들을 설득하기에 앞서 그들에게 지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같다.
<오마이뉴스 이재환>

오마이뉴스에서 보기

정부가 이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처럼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일까.

촛불에 밀린 MB, 대운하 보류? <프레시안>
민심소나기 피하자 '시간벌기'  <한겨레>

그러나 이제 더이상 정부의 꼼수는 통하지 않을 듯 싶다. 경찰이 '비폭력'을 외치는 촛불시위대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인터넷에 삽시간에 퍼지면서 민심도 흉흉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이전처럼 국민 반발이 예상되는 정책을 놓고 또다시 '하네 마네'하며 오락가락 한다면 기존의 촛불시위가 반정부 투쟁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 문제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경찰이 무방비 상태의 여대생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도 느꼈다. 바로 그 때문에 촛불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또다시 꼼수를 부린다면, 이번에는 나도 촛불을 들고 청계 광장이든, 광화문이든 닥치는 대로 달려갈 생각이다.

나처럼 태생적으로 반골인 사람들이 있다. 때문에 나는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조중동을 읽지 않는다. 또 여간해선 한나당이란 이름을 거론하지도 않는다. 대한민국 1%를 위한 신문과 정당에 도저히 애정을 가질 수가 없어서다.

그때문에 조중동에서 후원(?)하고, 한나당에서 뽑아 올린 MB란 사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정치적 발언을 삼가하며, 참고 또 참아왔다. 그 인내가 한계지점에 다다르고 있을 때 다행히도 정부는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 조차도 꼼수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것이 꼼수로 드러난다면,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 다만, 그들이 그동안 반골 기질을 애써 억누르며 참아온 나까지 광장정치로 내몰지 말아 주기만을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100일이이 아니라 마치 3년은 지난 듯싶다.'
 
MB 집권 100일.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백일에 대해 사자성어로 정리해 본다면, 아마도 견강부회 묵묵부답 안하무인 사면초가 정도가 될 듯 싶다.

1. 견강부회 (會)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이다. 안전성을 100% 담보하지 못하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정부는 안전하다는 주장만을 되풀이 했다. 그 결과 대대적인 국민저항운동으로까지 번진 '촛불 집회'를 촉발 시켰다. 또 정부는 대운하 문제만을 가지고도 벌써 여러 차례 말을 바꾸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상태이다.

2. 묵묵부답 (
答) 수많은 전문가들이나 네티즌들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정부는 시종일관 묵묵부답이었다. 오죽하면 '쇠귀에 경읽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일까. 정부의 이런 태도는 국민들에게 답답함과 분노를 느끼게 했다. 촛불 문화제에 'MB OUT'이란 피켓이 나온 배경도 결국 정부의 그런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3. 안하무인 ()
이것은 '눈 아래에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방자하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업신여김'이란 뜻이다. 물론 이 사자성어는 '국민을 섬기겠다'고 밝힌 정부의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취임 백일 동안 대통령의 거듭된 실책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나 고위공직자 혹은 장관 중 그 어느 누구도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 한번 제대로 날리지 못했다. 이것은 국민들에게 '이 나라에 국민은 없고, 오로지 대통령 한사람만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었다. 정부의 장관이라면 혹시 몰라도, 최소한 국민은 'MB 주식회사'의 사원이 아니다.

4. 사면초가 (四面楚歌) 100일 동안 국민과 MB는 제대로된 소통을 한 적이 없다. 그 결과 MB 정부는 국민의 신뢰에서 멀어졌다. 그것이 시스템의 문제인지, 대통령의 스타일 탓인지는 더이상 중요치 않아 보인다. 이미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붕괴 상태이기 때문이다. 무너진 신뢰를 원상 회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MB의 100일'을 사자성어로 최종 정리하면 '사면초가'로 압축할 수 있다.

잃어버린 10년과 잃어버린 100일 <경향신문> 사설

2MB는 아직도 국민속을 모른다

2MB의 '대국민 담화'를 보면 그는 여전히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들이 바라는 '경제'는 FTA와 같이 복잡하고 머리 아픈 거시적인 문제가 아니다. 또 그래프(경제성장률)의 오르내림이나 관찰하는 교과서적인 경제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하루 속히 붕괴된 공교육이 정상화되서 사교육비 부담이 줄어 들기만을 바란다. 또 누군가는 한학기 수업료가 500만원이나 되는 대학등록금에 좌절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는 물가로 시장을 보기가 두려운 주부들도 많다.

아마도 국민들은 단순히 '많이 벌어 많이 쓰는 것'만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확천금을 바라지 않는 이상, 비록 적은 연봉일지라도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 '알짜 경제'를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 경향신문 5월27일자 5면.  
 
흔히 의료비가 많이 드는 중증 환자가 있는 집안은 좀처럼 잘 살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수입의 대부분을 환자에게 지출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현재 중환자를 돌보며 허덕이는 집안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이다. 과도한 사교육비, 투자 대비 이윤이 적은 대학교육(청년 실업률 참고), 높은 육아 비용(출산률 저하 원인),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는 물가와 같은 중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국내문제 해결없는 FTA는 '무용지물'

이런 가운데 한-미 FTA 문제도 '대국민 담화문'에 포함되어 있었다. 정부의 주장대로 FTA가 우리 국민에게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인지도 물론 의문이다. 하지만 설령 FTA가 우리경제에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해도 국민들이 앓고있는 중병을 치료하지 않고서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집안에 '사교육병'이나 '물가상승'과 같은 중환자를 놔두고는 비록 수입이 다소 늘더라도 경제적으로 허덕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의사 역을 맡아 한국병을 치료해야 할 정부는 그동안 '사이비 처방전'을 남발했다. (인수위 시절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언론에 따르면 최근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이유로 '간접세는 늘리고 법인이나 고소득자의 소득세는 낮추'는 내용의 처방전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조세대비 간접세 비율은 44.8%로 OECD 평균 39%보다 훨씬 높다. 정부는 가뜩이나 높은 간접세를 지금보다 더 올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간접세가 오르면 물가도 덩달아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정부는 또 얼마전 일부 공기업을 민영화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물론 방만한 공기업에 대해 적절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데는 상당수의 국민이 공감할 것이다. 다만 그 해법이 '민영화'라면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물가도 벅찬데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되는 것을 반길 국민은 별로 없을 테니 말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고 싶다면, 처방전(정책)을 남발하기에 앞서 정확한 진단을 내놓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실제로 국민들은 정부가 '한국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것을 치료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정부는 발행하는 처방전마다 영 믿음직스럽지 못해 상당수의 국민을 실망시켰다. 따라서 정부가 '한-미 FTA를 비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점을 두어야 할 일은 따로 있는 듯 보인다.

국민들이 당장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치료할 것인지부터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우선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