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성시. 홍성에서는 좀 유명한 카페인데요. 지난해부터 이름을 홍성관광두레 사랑방이라고 바꾸어 부르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는 오마이뉴스로 보시죠. ( 시골장터에서 아메리카노 한잔 하세요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인터뷰] 충남적정기술협동조합연합회 안병일 이사


지역의 문화나 특징에 맞게 고안된 적정기술이 최근 대안 에너지 산업과 결합하고 있다.

충남적정기술협동조합연합회(회장 이승석)는 최근 충남 보령시 청라면의 은고개 마을과 '산림자원 에너지화'를 골자로 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일종의 유럽형 화목 보일러 기술을 도입해 마을의 에너지원으로 활용 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화목 보일러의 경우, 비록 소량일지라도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등을 유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러나 화목보일러는 도시가스를 보급하기가 쉽지 않은 농촌에서는 이미 대안 에너지로 활용되고 있다. 과수원의 나무나 가로수 등의 잡목 혹은 가지치기 과정에서 나오는 나무들을 보일러용 땔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관련 전문가들은 나무와 낙옆 등의 산림 에너지원을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대안 에너지의 하나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재준 아하!적정기술협동조합(홍성) 이사는 "나무나 낙엽 등의 산림자원은 태우더라도 석탄화력이나 원자력 발전에 비해 환경오염이 적다"며 "농촌의 특성에 맞는 재생에너지로서 산림에너지가 지닌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산림자원이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대안 에너지로서의 가치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을 들어 보기 위해 9일 오전, 내포신도시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충남적정기술협동조합연합회 안병일 이사를 만났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9일 오전, 내포신도시 충남공익지원활동센터에서 충남적정기술연합회 안병일 상임이사를 만났다.)


- 산림에너지를 활용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화력발전소가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태양광이나 풍력이 조명 받고 있다. 하지만 태양광이나 풍력만으로는 원자력이나 화력발전을 100% 대체 할 수 없다. 낙엽과 나무 등의 산림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 하지만 환경적인 측면에서, 나무를 태워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식에 대한 대중적인 거부감이 있다.
"연소를 시키는 배출 가스의 질이 중요하다. 나무를 태우면 기본적으로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미세 먼지다. 미세 먼지를 줄이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 대안은 있나.
"현재로서는 유럽의 기술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유럽은 미세먼지 배출 기준이 엄격하다. 미세먼지 배출 기준을 시간당 40mg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준에 맞추다보니 유럽은 관련 기술이 상당히 발달해 있다." 

- 유럽의 상황은 어떤가.
"나무는 일상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다. 유럽은 이미 산림 바이오메스 즉, 나무와 낙옆 등의 산림자원을 풍력이나 태양광과 같은 대안 에너지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럽의 경우, 에너지 자립마을에서 나무를 에너지원으로 채택하는 곳이 적지 않다."

- 그렇다면 나무는 어디서 어떻게 구하나.
"그래서 사전 조사가 중요하다. 반경 70km 이내에 나무의 가지치기로 인해 나온 잡목의 양이나 간벌양 등을 정확히 파악해 화목 보일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특히 나무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와 산립조합 등의 협력과 지원이 절실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농촌이나 도시나 서민들의 삶은 고단하고 팍팍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요즘은 아무 생각없이 멍을 때리거나 무언가에 몰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홍성도서관 앞을 지나는데 우연히 외발 자전거 타기를 연습하고 있는 최진환(56)씨를 만났습니다.

그가 외발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몰입과 명상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사실 번잡하고 잡스러운 생각을 떨쳐 버리는데는 몰입 만큼 특효약도 없습니다.

언듯 보기에도 외발 자전거 타기는 상당한 집중력과 기술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명상과 몰입을 즐기는 탓일까요. 그의 한 마디 말에서 깊은 내공이 느껴집니다.

최진환 씨는 "그동안 돈을 버는 일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며 살았던 것 같다. 돈은 떨어 지면 벌 생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충남 홍성경찰서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던 시민단체 회원이 경찰서 안으로 진입, 경찰과 언쟁을 벌이며 30여 분간 대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지 이틀이 지나가고 있는 가운데 충남 홍성경찰서 앞에서는 물대포 경찰은 사죄하라며 연일 1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홍성경찰서에는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쏜 두 명의 경찰 중 한명인 최아무개 경장이 근무하고 있다.

 

27일 오전 9. 예산군 농민회 회원(30대 여성)백남기 농민을 살려내라, 대통령은 사죄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1인 시위를 벌이던 농민회 회원은 최 경장을 만나 커피나 한잔하며 인권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며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예산군 농민회 회원은 이어 최 경장이 언론에 기고한 글을 보면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꼭 만나서 인권 문제에 대해 토론해 보고 싶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홍성 경찰서 관계자는 최 경장은 휴가 중이다, 지금은 만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 농민회 회원은 최 경장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진 홍성경찰서 2층 사무실로 올라가려고 시도했다. 이에 따라 홍성경찰서 여경 및 여성 직원 4명과 5-6명의 경찰 관계자들은 이 농민회 회원을 가로 막으며 2층으로의 진입을 막았다.

 

농민회 회원은 민원인이 경찰을 만나 차한잔 하자는데, 뭐가 문제냐며 따졌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민원 내용이 뭐냐며 맞섰다.

 

이 농민회 회원은 경찰의 무차별 살수로 사람이 죽었다, 백남기 농민이 317일 동안 병원에 누워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경찰이다라며 최 경장과 만날 약속을 잡아 주면 돌아가 겠다고 말했다.

 

홍성 경찰서 관계자는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에서도 조사를 진행 중이고 청문회도 진행중에 있다차후에 방문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경찰과 농민회 회원 사이의 대치는 농민회 회원이 자진 귀가하면서 마무리 됐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최근 충남 홍성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변경된 홍성의 옛 이름인 '홍주'를 되찾자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홍주 지명을 되찾기에 앞서 교육을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1일 오후 2시. 충남 홍성문화원에서는 '홍주지명 되찾기 및 지역발전전략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병학 전 예산교육장은 "홍성 지역만 해도 각국에서 모인 다문화 가정이 많다"며 "이들이 과연 홍주 지명 찾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진정한 의미의 홍주 지명 찾기는 정치적인 판단이나 여론에 떠밀리는 형태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며 "홍성 주민의 가슴 속에서 지명 찾기에 대한 열망이 우러나야 한다"고 지적 했다.

이병학 전 교육장은 그 대안으로 "청운대학교 등 지역의 교육 기관과 연계해 홍주 지명의 유래를 교육하고, 그 당위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발제문을 통해 "홍주라는 지명을 되찾지 못한 것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결과"라며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홍성의 고유지명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홍주는 지난 1914년 일제에 의해 홍성으로 지명이 변경 되었다. 조선 총독부가 실시한 행정 구역 재편 과정에서 홍성군이 탄생한 것이다. 기존의 홍주와 결성현이 합쳐지면서 홍주의 홍과 결성의 성자를 따 홍성군이 만들어 졌다. 그 결과 공주 홍주 청주 충주의 충청도 4목 중 유일하게 홍주만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홍성 출신인 조부영 전 국회부의장은 "나에게도 일본식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해방과 동시에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며 "홍주도 해방과 동시에 이름을 되찾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이어 "홍주 이름 찾기에 군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행정 절차상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오늘을 계기로 절차가 잘 진행 될 수 있도록 함께 뜻을 모으자"고 제안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19일 오후 홍성군청에서는 홍성군과 충남도 주관으로 일자리 박람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다문화 가족 리술로바 구잘(33)씨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구잘씨는 우주베기스탄 출신인데요. 5섯살 아들을 둔 엄마 입니다.

한국에 온지 8년째라서 그런지 한국어도 꽤 능숙합니다.

내포에 살고 있다는 구잘씨는 "세무회계와 컴퓨터 유지관리를 배우고 있다"며 "사무직으로 일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구잘씨! 취업에 꼭 성공하세요. 파이팅!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역재 방죽은 홍성 문화원 앞에 있다.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인공저수지라고 한다. 오마이뉴스에 관련 기사를 올렸는데 아쉽게도 잉걸기사에 그쳤다

 

홍성에 놀러 온다면 꼭 역재 방죽에 들려 보시기 바란다. 산책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관련 기사는 아래에 링크된 오마이뉴스를 참고해 보시기 바란다. 기사는 물론 내가 쓴 거다.

 

홍성에는 홍주성 밖에 없다고?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아래 기사 오마이뉴스에서 보기

 

얼마전 고향 인근의 홍성으로 이사를 왔다.

 

막상 이사를 와서 이곳 저곳 일자리를 알아 봤지만 지역이 지역인지라 일다운 일자리가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던 터에 아내가 구직 사이트를 보고 모신문에서 취재 기자를 뽑는 다는데 지원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오랫 동안 현장 취재를 쉬어서 다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게다가 박봉에 근로 조건 마저 열악한 지방 신문에 근무 한다는 것이 녹록지 않을 것이란 것 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약간 망설였고 고민 끝에 원서를 넣어 보기로 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라 연락이 안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원서를 넣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 지역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처음 면접에서 별도의 수습기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면접에서 편집장은 새누리당 공천에서 배제된  "유승민 의원의 독자 출마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에 대해 나는 각종 여론 조사 결과를 볼 때 유승민 의원이 승산이 있는데 굳이 불출마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라는 취지로 답변을 했다.

 

돌아온 대답은 "공천에서 배제 되었다고 독자 출마를 선택 한다면 정당 정치에서 정당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인가"라는 반박이었다. 물론 정치적인 견해는 사람 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분을 설득하는 것은 꽤나 어렵겠다 싶었다. 이미 기존 정당들이 전략 공천이란 미명하에 국민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인물을 지역구에 꽂아 넣고 있다. 이처럼 여론을 무시하고 당 최고 권력자의 입김이 반영된 일방적인 공천으로 무리를 빚는 것이 진정한 정당 정치란 말일까.  

 

여기서 첫번째 돌뿌리에 걸린 느낌이었다. 정치적인 성향이 확연히 다른 편집장을 설득하며 기사를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왕 좌왕 첫번째 면접이 끝나고 다음엔 대표 면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이때 까지도 별도의 면접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동안은 언론사 면접 형태가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신문사에 들어가면서 면접을 두번 이상 보기는 또 이번이 처음이다. 며칠후 대표 면접이 잡혔다. 면접이라기 보다는 사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대표는 지역 출신임을 증명할 수 있는 고등학교 졸업 증명서와 모 신문사의 경력 증명서를 떼어 올수 있느냐고 물었다. 최종 학력을 증명하는 대학 졸업 증명서도 아니고 지역민임을 증명하는 고등학교 졸업 증명서가 필요하다는 말에 또한번 놀랐다. 그때서야 '아 여기가 지역 신문이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지역민이 아닌 사람은 일종의 텃새로 느낄 수도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신문사 경력 증명서까지 떼오라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퇴사한 회사에 경력 증명을 부탁하는 일도 쉬운일이 아닐 뿐더러 그동안은 경력을 스크랩한 기사로 대체 했기 때문에 경력 증명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실제로 인터넷만 검색해도 과거에 썼던 기사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이다.

 

사실 내게 필요한 것은 경력을 증명하는 일보다 2008년 이후 단절된 현장 취재력을 어떻게 끌어 올릴지가 더 큰 문제였다. 두달이 될지 세달이 될지 모를 수습기간 동안 제시된 급여는 월 100만원이다. 지방이라 지하철도 없고 취재를 나간다면 모두 자가용을 이용해야 하는데 월 100으로 비용을 감당하기란 쉽지가 않아 보였다. 

 

기자를 업으로 삼는 다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단순히 기사를 쓰고 싶다면 블로그나 오마이뉴스 등 창구는 얼마 든지 있는 세상이다. 굳이 신문에 들어가 마감 스트레서스에 시달리며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면접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국 돌고 돌아 내가 마지막 신문사를 퇴사 하던 당시에 했던 원초적인 고민에 봉착하고만 것이다. 결국 "이 길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일자리도 알아보는 중이다"라고 말하고 면접 장을 나서야 했다.

 

잠시나마 다시 기자로 돌아가 볼까하는 생각에 며칠간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또다시 펜과 수첩을 들고 현장을 누빌 생각에 설레이기도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꿈은 꿈일 뿐 나의 현실은 다른 곳에 있는데 꿈을 쫓아 고분 분투 하기엔 내가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