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금 당장 냄새를 맡지 못한 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난 주 중반 무렵 심한 코감기를 앓은 뒤 축농증이 찾아와 후각을
잃어 버렸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런 냄새를 맡을 수 없으니 불편이 이만 저만이 아니더군요. 혹자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냄새를 못
맡는다고 뭐 그리 크게 불편할까하고 말이죠.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고 있습니다. 시각의 경우 눈을 감아
보면 눈앞이 캄캄해 일시적으로 무섭기도 하고 답답한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청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지요. 귀를 꽉 막고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것을 상상해 보면 그 불편함이 어느 정도 일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후각은 좀 다르죠. 후각 상실은 여간해선 실제로
경험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그것을 굳이 경험할 필요는 없겠죠. 혹시라도 후각 상실을 경험해 보겠다고 코를 막는다면 호흡 곤란을 경험할 지언정
후각상실 상태를 느낄 수는 없습니다. 후각상실은 숨은 쉴 수 있지만 냄새를 맡을 수없는 상태기 때문이죠.
인터넷으로 후각상실을
검색해 보니 참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더군요. 그 중에서 가장 와 닿았던 얘기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데, 아무도 그 불편함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일단 후각을 잃어 보니 미각도 떨어지더군요. 음식의 맛을 거의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맛을 느끼는 것은
미각보다는 후각의 작용이 더 크다고 하더군요. 일단 냄새가 뇌를 자극해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얘기겠죠.
제 경우에도
후각이 마비된 이후 맛을 느낄 수 없으니 식욕은 떨어지고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자리도 불편해 지더군요.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친구가 "맛있어?" 라고 묻는데 순간 "아무 맛도 안나,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음식을 정성 것 만드신 주방장님이 우리의
대화를 들었다면 참 서운해 하셨을 것 같습니다.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후각상실로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타는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겠죠. 얼마전 모 방송에서 방송인 홍석천씨가 냄새를 맡지 못해 죽을 뻔한 경험을 털어
놓았습니다.
가스불에 음식을 올려놓은 상태로 자다가 질식사할 뻔 했는데, 마침 놀러온 후배가 가스를 꺼 살았다는 얘기였죠.
홍석천은 어릴 때 축농증을 심하게 앓은 뒤로 후각을 잃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비염이나 축농증을 방치할 경우 후각세포가 제 기능을 잃어 영원히
후각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불편함은 이뿐만이 아니죠. 후각을 잃으면 상한 우유나 상한 물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으니 우유가 상한 건지 아닌지도 모르고 벌컥 마셨다가 배탈이 났다는 후각 상실자들의 하소연도 많더군요. 제 경우에도 요즘
식초 냄새조차 맡지 못합니다. 시험 삼아 식초를 물에 타 먹어 봤습니다. 일단 냄새가 없으니 물처럼 느껴지더군요.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톡 쏘는
식초 맛이 느껴지는 정도입니다.
만약 이것이 식초를 희석한 물이 아니라 상한 물이나 우유였다면 모르고 마셨을 가능성이 커
보이더군요. 이 글을 쓴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후각이 지나 치게 저평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그리고 후각을
상실한 후각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배려라는 것이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주변에서
누군가 후각 장애를 호소한다면 그들이 지닌 불편함을 인정해 주었으면 합니다. 혹시 그들이 맛을 잘 못 느끼더라도 이해하고 냄새를 조금 못
맡더라도 그 상황을 잘 설명해 주시면 됩니다. 마치 시각 장애인에게 손을 내밀어 길을 안내 하듯이 말이죠.
(오마이뉴스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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