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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시선

기자를 소송의 달인으로 만드는 '권력'

 

 

일일히 이름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최근 언론계는 기자상을 수상하고도 기쁨을 누리기는커녕 소송에 시달리며 고초를 겪는 기자들이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기자협회보에는 매우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실렸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정부나 권력 기관 등이 언론 자유를 침해할 목적으로 기자에게 소송을 제기할 경우 법원이 별도의 심리 없이 이를 각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기자들이 불필요한 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종의 안전 장치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사의 내용이 법적인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권력 기관들이 기자를 압박할 목적으로 제기하는 소송을 일컬어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한다.

물론 취재원 보호에 관한 법률 하나도 제대로 제정하지 못한 나라에서 법원이 기자를 보호하기 위해 소송(전략적 봉쇄소송)을 임의로 각하하는 문제 까지 언급하는 것은 다소 앞서가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미국 법원의 태도 만큼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실 언론 자유와 관련한 논의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언론계 내부에 있다. 일부 매체들은 선정적인 보도로인해 기레기(기자+쓰레기)로 까지 불리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 이들의 무책임한 보도 태도는 언론자유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여론을 형성하는데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기레기 문제로 시야를 가리기에 앞서 기자들이 처한 현실부터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현재 한국은 취재원 보호에 관한 법률조차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자협회의 윤리 강령에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취재원을 보호한다'고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언론이 취재원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언론은 취재원을 보호함으로서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핵심 정보에 다가 갈 수 있게 된다. 제법 굵직한 특종 기사 뒤에는 대부분 내부고발자와 같은 결정적인 제보자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취재원(내부고발자)들이 익명성을 보장 받지 못해 검경의 수사를 받거나 고소 고발을 당한다면 제보 활동은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취재원으로부터의 제보가 차단된 언론은 공익적인 문제를 취재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말랑 말랑한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언론 환경은 결국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일삼는 기레기를 탄생시키는 토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취재원 보호의 중요성이 새삼 주목 받고 있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5년 4월 새정치 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은 '언론에 취재원 공개를 강제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취재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끝내 통과 되지 못했다.

취재를 위한 기본적인 법률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일까. 언론인들은 갈수록 소송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 되고 있다. 취재에 열정적이고 기자 정신이 투철할 수록 권력의 '묻지마'식 소송에 시달리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기자협회보 김달아 기자가 지난 3월에 작성한 기사( 패소 뻔한데 "고소하겠다", 알아서 조심하라는 권력)는 권력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기자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드물긴 하지만 권력으로부터 소송에 걸려도 나름의 노하우로 잘 이겨 내는 기자도 있다.

기자들 무고죄로 맞대응, 문제는 '시간'

언론 관련 소송에 있어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를 언급하지 않으면 서운할 정도다. 주진우 기자는 자신의 소송 경험담을 책(<주기자의 사법활극>)으로 엮어내 주목 받기도 했다. 권력자들과의 빈번한 법정 다툼으로인해 주진우 기자는 어느새 소송의 달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실제로 주진우 기자는 기사와 팟케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와 관련해서 10여개의 소송을 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또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을 고소한 상대를 무고죄로 맞고소하며 강력하게 대응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가 무고죄로 상대를 압박하며 맞대응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시간상의 문제로 소송 상대를 무고죄로 맞고소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작은 언론사 기자들의 경우 지면 부담이 큰 것은 물론이고, 회사 내부의 잡무까지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전문지 기자는 "기자들은 소송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며 "무고죄로 맞고소 하려면 또다시 시간을 뺐겨야 하는데 빠듯하게 돌아가는 업무 특성상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남발하는 '묻지마 소송'에 기자들은 점점 더 지쳐가고 있다. 얼마전 청와대 발 특종을 터트린 것을 계기로 기자협회로부터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A기자는 "청와대에서 아주 사소한 것까지 시비를 걸어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기자들은 기사와 관련해 소송을 당하면 기사 쓰랴 소송 준비하랴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에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실제로 한번 소송을 경험한 기자는 기사 작성시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를 검토하며 자기 검열에 빠지는 부작용까지 겪는다.

법적으로든 제도적으로든 기자들이 정치 권력으로부터 부당한 소송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재환 기자 fanterm5@한메일 넷